엄마의 유자청에 감사를 표하며 장희수 "이사할 때마다 고통받는 맥시멀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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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에디터 장희수입니다.
오늘은 멘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정확히는, 멘토를 찾는 일에 대해서. 제 여정의 시작에는 어김없이 엄마의 유자청이 있었습니다.
사람을 많이 만나는 직업이다 보니 관계의 시작과 지속에 관한 생각을 자주 생각하게 됩니다. 학생들이 저를 멘토로 찾아줄 때마다 가슴이 한 번 부풀어 오르면서도, 동시에 내 여정도 거꾸로 돌아보게 되거든요.
이 글은 '멘토를 찾는 가장 좋은 방법' 같은 답이라기보다는, 지나온 멘토 관계를 돌아본 기록 같은 글입니다. 쓰다 보니 멘토 관계를 넘어서 전반적으로 관계에 관한 글이 되어버린 것 같긴 한데요. 그리고 어버이날을 맞아서 어머니와 어머니의 유자청에도 깊은 감사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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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자청이라는 관계 입장권
2. 이제는 내가 누군가에게 핑계를 건네는 사람
3. 관계는 종종 작은 핑계에서 시작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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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과에서 메일이 한 통 왔습니다. 지도교수님이 배정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담임선생님 같은 건가? 시간표 어디에도 ‘지도교수’라는 과목은 없었습니다. 어떤 용건으로 찾아뵙는 건지, 아니 애초에 찾아뵙기는 해야 하는 건지조차 모르겠더라고요. 메일 한 통에 “배정되었습니다”라고 적혀 있는 그 관계가 그저 어색했습니다.
저는 엄마한테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엄마가 너무 당연하다는 듯 말했습니다.
“한 번 찾아뵈어야 지도교수님이 뭐 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지. 일단 어떻게든 인연이 닿았으면 찾아서 인사드리는 거야. 그렇게 서로 알아가고, 이게 뭐 하는 관곈지 알아가는 거야.”
그러더니 한 마디 덧붙이셨습니다. “엄마가 유자청 줄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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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개의 레시피에 유자청 검색하니까 노란장미님의 레시피 제목이 "딸에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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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담임 선생님과 면담이 잡힌 날이면 엄마는 어김없이 집에 재워둔 유자청을 꺼내셨습니다. 플라스틱 통이 아니라 꼭 유리병. 예쁘게 포장해서 제 손에 쥐어주셨습니다.
어렸을 때 저는 속으로 생각했죠, 또 이놈의 유자청...! 창피해! 무겁다고 볼멘소리로 어엄청 투덜대면서 등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가방에 넣고 학교에 가는 길이면 유리병이 다리에 자꾸 부딪혔습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저는 그렇게 대학생이 되어서도 유자청을 들고 등교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지도교수님 연구실 문 앞에 처음 섰던 날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가방 속 유리병이 묵직하게 흔들렸고, 노크를 하기 전에 가방을 한 번 내려놓고 숨을 골랐습니다. 머릿속에는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굴러다녔습니다. 용건도 없는데 불쑥 찾아온 학생을 교수님은 우습게 여기지 않으실까. 그리고, 이 무거운 유자청을 도대체 어떻게 꺼내드려야 자연스러울까.
문이 열리고, 저는 어색하게 인사를 드리며 가방에서 유리병을 꺼냈습니다. “엄마가… 직접 만드신 거예요.” 교수님은 병을 잠깐 들어 향을 맡으시더니, “그럼 같이 한 잔 할까요?” 하고는 전기포트를 켜러 가셨습니다.
그제야 알았습니다. 유자청은 어머니의 배려였다는 걸요. 할 말이 없는 제가, 찾아뵐 용건이 없는 제가, “유자청을 드리고 싶어서 왔어요”라는 말 한 마디로 관계를 시작할 수 있도록. 그렇게 멘토를 만날 수 있도록 엄마가 미리 제 손에 쥐어주신 입장권 같은 것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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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밥 먹었니”가 애정이라고들 하잖아요. 안부를 묻는 그 한마디 안에 사실은 너를 생각하고 있다는 마음이 같이 담겨 있다는 거요. 엄마의 유자청도 비슷한 의미였던 것 같습니다. “이거 가져가”라는 말 안에는 사실 “용기 내서 다녀와, 인사드리는 게 시작이야”라는 응원이 같이 담겨 있었던 겁니다.
유자청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저는 인생 내내 유자청의 위력을 맛봤어요. 유자청은 언론사에서 첫 인턴을 나갔을 때도, 석사과정을 시작했을 때도 계속해서 이어졌습니다. 새로운 곳에 갈 때마다 엄마는 어김없이 유리병을 꺼내셨고, 저는 어김없이 그걸 가방에 넣고 출근하거나 등교했습니다.
인턴 첫날에는 데스크 부장님께, 석사과정 첫 학기에는 새 지도교수님께. 저는 인턴 첫날에도 데스크 부장님이 정확히 무슨 일을 하시는 분인지 잘 알지 못했고, 석사과정 첫 학기에는 "연구"가 "공부"와 어떻게 다른 건지 알지 못하는 꼬꼬마였습니다.
받는 분이 잠깐 향을 맡으시고, 탕비실로 가셔서 따뜻한 물을 끓이시고, 그러는 동안 저는 어색하게 손을 모으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김이 올라오는 잔이 제 앞에 놓이는 순간, 신기하게도 첫 만남 특유의 긴장이 한 김 풀렸습니다.
거기서부터 진짜 대화가 시작됐습니다. 일과 관련된 이야기에서 시작하지만 결국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더 다채롭게 알게 되는 이야기. 또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더 다채롭게 알릴 수 있는 이야기. 그리고 한 번 그렇게 시작된 관계는 이상하게도 오래 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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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자청의 위력으로 자란 제가, 이제 학생들 앞에 서 있습니다. 교수가 되어서요.
신기한 건, 어느 순간부터 제가 학생들에게 똑같은 핑계를 만들어주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매 학기 첫 주, 저는 ‘환영 주간(Welcome Week)’이라는 걸 만들었습니다. 강의 첫날 슬라이드에 이렇게 적어두죠.
“제 오피스에 초코파이가 맛별로 잔뜩 있어요. 여러분은 그냥 문을 두드리고, ‘초코파이 먹으러 왔어요’ 하면 됩니다. 그러면 추가 점수 1점이 자동으로 들어가요. 간단하죠?”
학생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웃습니다. 정말 그것만 하면 추가 점수를 줘요? 네, 정말 그것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한 명씩 문을 두드리기 시작합니다. 어떤 학생은 초코파이를 잔뜩 챙겨가고, 어떤 학생은 한입 베어 물다가 갑자기 자기 진로 얘기를 시작하고, 어떤 학생은 그냥 의자에 앉아 한참 침묵을 지키다가 “사실 요즘 좀 힘들었어요”라고 말을 꺼냅니다.
어떤 날은 운 좋게도 제가 마침 그 학생이 필요로 하는 자료를 갖고 있기도 하고, 그 친구에게 딱 맞는 장학금 기회를 우연히 알고 있기도 합니다! 또 어떤 날은 이 학생이 열여섯 살 때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살았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되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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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 꾸미기에 진심인 편. 임용 후 연구실 입주 첫 날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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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최근에는 이런 일이 있었어요. 작년 5월, 기말고사 기간에 학교에서 학생들 응원 차원에서 선인장 화분을 나눠주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식물! 연구실에 놓을 식물을 얻을 심산으로 재미 삼아 갔는데, 앞에서 화분을 나눠주던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묻더라고요. “몇 학년이야? 2학년? 3학년? 나는 정책학과 3학년이고 이 단체를 담당하고 있어” (신임 교수의 특권 : 학생으로 오해받기. 너무 즐겁습니다, 즐길 수 있을 때 즐기려고요.) 사실은 새로 임용된 교수고 미디어법, 미디어 윤리를 가르친다고 했더니, 한 친구가 자기는 법학과인데 제 수업을 듣고 싶다는 거예요. 그래서 한번 초코파이 먹으러 오라고 했죠(어김없이 등장 ㅋㅋ). 그 친구는 정말 그다음 주에 제 오피스 문을 두드렸고, 초코파이를 먹으면서 자기 얘기를 잔뜩 풀어놓더니, 제 수업을 정말 들으러 왔답니다! 정말 우연히 그렇게 관계가 시작됐던 겁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초코파이를 나눠주지만, 사실 제가 주고 있는 건 저와 관계를 시작할 수 있는 핑계라고 생각해요. 용건 없이 교수의 방문을 두드릴 수 있는 핑계! 추가 점수 1점이라는 미끼 뒤에 숨길 수 있는 어색함의 완충재. 이렇게 핑계로 시작될 수 있었던 이 관계가 자신을 어디로 데려다줄지는 저도 학생도 전혀 모르는 겁니다. 그 순간이 될 때까지는요. 엄마가 제 손에 유리병을 쥐여주셨던 것과 정확히 같은 동작입니다.
이런 핑계 만들기가 익숙해지면 정말 습관이 되더라고요. 저는 학생들이 이런 핑계를 찾는 습관이 생기면 좋겠어요.
이쯤 되니 저는 수업안으로도 이 핑계 만들기를 들여놓게 됐어요. 언론학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우리 동네 기자를 찾아가 윤리적 딜레마에 관해 인터뷰해 오는 프로젝트를 냅니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 동네를 다루는 기자님과의 인연이 시작되죠. 윤리 수업에서는 학년이 다른 친구끼리 수업 밖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오는 걸 숙제로 내고요. 커피를 마시는 동안 지금 인생에서 겪고 있는 가장 큰 윤리적 딜레마를 서로 인터뷰해와야 합니다! 물론 학문적으로도 당연히 의미가 있는 숙제들이지만, 이 과정에서 저는 학생들이 ‘이건 숙제니까 어쩔 수 없이’라는 핑계로 누군가를 한 번 만나봤으면 좋겠거든요. 한 번 만나면,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는 그 마법을 저도 똑같이 겪었으니까요.
실제로 인터뷰 과제를 계기로 인턴 기회를 얻은 친구들도 몇 명 있고, 윤리적 딜레마를 서로 인터뷰하다가 베프가 되는 친구들도 꽤 자주 보입니다. 진짜 모른다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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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윤리학 수업에서는 남자친구를 얻은 친구도 있어요!! 윤리학 최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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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로 만나도 좀 오래 지속되는 멘토와 인연들이 있다고 느껴져요. 매우 개인적인 경험이라 일반화는 곤란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런 관계들에 공통된 결이 있더라고요.
저는 일단 우연히 시작된 관계가 많았어요. 학회 뒤풀이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된 어떤 교수님, 인턴 시절 옆자리에 앉으셨던 선배 기자님, 석사 시절 같은 층에 계셨던 박사 선생님, 박사 시절 우연히 연구실을 나눠쓰게 된 후배 친구. 누구 한 분도 “이분이 내 멘토다” 하고 정해놓고 만난 사람은 없었어요. 그냥 어쩌다 마주 앉게 된 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좋아요. 기대 없이 시작된 만남은 부담이 적으니까 오히려 길게 가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일상에서 함께할 수 있는 관계가 많았던 것 같아요. 책을 내신 분도 아니고, 유튜브에 영상 한 편 안 올리신 분들. 제가 어디서 콘텐츠로 먼저 만난 분이 아니라, 제 일상 안에서 그냥 옆에 있던 분들이요. 그 거리감이 마음에 들어요. 시간 약속 한번 잡기에 너무 부담스럽지 않은 거리. 그분으로서도 제가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같은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이라, 만남이 좀 더 일상에 스며들게 됐던 것 같아요.
또, 대부분 같이 마주 앉아 따뜻한 걸 마실 수 있는 관계였던 것 같습니다. 줌은 잘 안돼요(이건 진심으로요). 줌으로는 정보 전달까지는 가능한데, 멘토라는 관계가 형성되기엔 뭔가 결정적인 게 빠져 있어요. 같이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김이 올라오는 그 시간 속에서, 비로소 ‘이 사람과 내가 같은 자리에 있다’는 감각이 생기더라고요. 그놈의 유자청 한 잔이 줬던 게 결국 그거였던 것 같아요.
좀 비주류인 제 취향 하나 고백하자면, 저는 어렸을 때부터 회식을 좋아했어요. 직장인 시절에는 일단 회삿돈으로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고요(!!), 그보다 더 좋았던 건 일 얘기 아닌 얘기를 한참 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일이라는 공식 채널로는 잘 보이지 않던 그 사람의 결이, 회식 자리에서 갑자기 드러나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그렇게 사람의 다른 면을 만나야 비로소 관계가 시작되더라고요.
이제는 제가 사주는 입장이 됐는데, 신기하게도 마음은 별로 안 변했습니다. 학생들, 동료분들과 같이 밥 한 끼, 맛있는 디저트 사 먹으면서 일 아닌 얘기를 하는 그 자리가 여전히 좋아요. 솔직히 요즘은 법인카드 가지고 학생들한테 아이스크림 사주는 재미로 산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직급이 바뀌어도 좋아하는 마음은 잘 안 변하나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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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가끔 인플루언서 콘텐츠를 보면서 “이분 너무 좋다, 이런 분이 내 멘토면 좋겠다.” 합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면 그 마음은 슬그머니 가라앉아요. 왜냐하면 그분들은 저를 모르니까요. 제 망설임을 본 적이 없고, 제 이름도 모릅니다. 그분들의 좋은 말은 좋은 말로 남고, 그게 제 인생에 닿으려면 결국 저를 아는 누군가가 한 번 더 번역 해줘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이상하게도, 더 멀리 있는 사람보다 더 가까이 있는 분들에게 자꾸 마음이 가게 됩니다.
이 취향이 SNS 시대에 좀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거 압니다. 다들 더 빠른 답을, 더 유명한 사람의 검증을 원하는데, 옆 연구실 누구에게 차 마시러 가자고 하는 건 영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이게 오히려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해요. 5분의 따뜻한 대화 한 번이 검색 한 시간보다 멀리 데려가는 경우가 분명히 있거든요.
그래서 학생들이 “이유가 없어서 못 찾아뵙겠어요” 하면 저는 자주 이렇게 답합니다. 이유 없이도 괜찮으니까 그냥 “한번 뵙고 싶었어요” 하면 된다고요. 사실 그 한마디가 거의 전부거든요. 엄마가 제 손에 유자청을 들려 보내신 것도, 결국 제가 그 한마디를 꺼낼 수 있도록 도와주신 거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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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엄마는 더 이상 제 손에 유리병을 쥐여주시지 않습니다. 제가 새로 만나야 할 사람들은 제가 알아서 찾아가야 하는 나이가 되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저도 제 가방 안에 뭔가 작은 걸 챙겨 넣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러 가는 날이면 작은 디저트, 학교 근처에서 산 굿즈, 그분이 좋아할 만한 책 한 권. 거창하지 않은 무언가를요.
사실 핑계입니다. “이거 드리고 싶어서 왔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핑계. 그리고 그 자리에서 같이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핑계. 엄마에게 배운 단 한 가지를 저는 지금까지 그대로 들고 다니는 셈입니다.
이제 곧 스승의 날이네요. 여기까지 읽어주셨다면 한 분 떠올려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내 인생에서 우연히 마주 앉았다가 오래 남은 분이 있는지, 그분과 처음 마주 앉았을 때 우리 사이에 어떤 ‘핑계’가 있었는지. 그리고 어쩌면 오늘, 짧은 안부 메시지 한 통 정도의 핑계로 그분께 한 번 손을 뻗어보셔도 좋고요.
거창한 만남이 아니어도, 거창한 멘토가 아니어도, 그렇게 천천히 시작되는 관계가 결국 저를 가장 멀리 데려와 주었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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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장희수>의 코멘트
진짜 인연은 모르는 거라니까요!! 귀한 조합이라 갖고 와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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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oe • 구현모 • 찬비 • 오리진 • 요니 • 장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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