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입는 옷은 취향일까, 습관일까 나나 "언제나 뭔가를 살 생각에 가득 차 있는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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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에디터 나나입니다.
어거스트에 마지막으로 레터를 발행하던 때가 한창 추워지던 겨울인데, 어느새 봄이 되었네요. 오랜만에 한우물레터를 통해 인사드립니다.
요즘 저는 틈틈이 옷장 정리를 하고 있어요. 3월까지는 봄이라고 해도 제법 쌀쌀한 날씨가 이어지다 보니 4월이 되고서야 본격적으로 겨울옷을 정리하고 봄옷을 꺼내게 되었는데요. 문득 옷장을 살펴보다가 재밌는 발견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결혼과 함께 독립을 하면서 지금은 방 하나를 드레스룸처럼 쓰고 있는데요. 한쪽 벽에는 남편이 자주 입는 데님과 체크 셔츠가 걸려 있고, 반대편 벽에는 제가 즐겨 입는 니트와 아우터가 걸려 있습니다. 같은 공간 안에 나란히 걸린 옷들을 보고 있으니 서로가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가 생각보다 선명히 드러나더라고요.
결혼 전에는 혼자 방을 쓰면서 늘 제 옷만 보다보니 몰랐는데, 이렇게 누군가의 옷과 함께 놓고 보니 내가 어떤 옷을 고르고 입는 사람인지 새삼 또렷하게 보였어요. 그래서, 오늘 레터에서는 제가 옷을 고르고 입는 취향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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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또 너 같은 옷 골랐구나
2. 왜 이 옷을 골랐냐 물으신다면
3. 취향과 현실 사이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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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옷 입는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날 입고 나가는 옷은 꼭 제가 맘에 드는 걸로 골라 입어야 했고요(육아 난이도 중상). 국내 브랜드든 해외 브랜드든 입어보고 싶은 스타일이 있으면 한 번쯤은 꼭 시도해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좋아하는 브랜드의 런웨이를 시즌마다 챙겨보고, 새로 생긴 쇼룸이 눈에 띄면 일부러 들러보고, 한남동 주변에 해외 브랜드 팝업 스토어라도 있으면 일정을 그쪽에 맞춰서라도 옷을 직접 보고 오는 것이 저의 취미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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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약수에서 있었던 익스트림 캐시미어 개러지 세일에 다녀왔습니다.
늦게 가서 건질만한 건 없었지만요… (사진 : 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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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단순히 옷을 사는 행위만 좋아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새로운 옷을 발견하고, 직접 보고, 만져보고, 입어보는 모든 과정을 좋아합니다. 꼭 구매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옷을 보는 시간 자체가 즐거운 마음이 들거든요. 사람들이 어떤 옷 앞에서 오래 머무는지 구경하는 모습도 재미있고, 쇼핑몰 화면으로만 보던 소재감이나 색감을 직접 확인하는 일도 저에게는 하나의 놀이처럼 느껴집니다.
특히 평소에는 일상적으로 편하게 입을 수 있으면서도 자세히 보면 매력적인 디테일이 있는 옷에 끌리는 편이에요. 너무 꾸민 것처럼 보이지 않아도 입는 사람의 취향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옷이라고 할까요. 한동안은 아모멘토(amomento)만의 독특한 실루엣에 꽂히기도 했고요. 최근에는 티크(teak)나 콜로신스(colocynth)처럼 색감과 패턴을 아름답게 잘 쓰는 브랜드의 제품도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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킷사텐에서 영감을 받은 아모멘토의 2026년 봄 컬렉션 (© amomen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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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브랜드를 알게 되는 경로도 꽤 다양합니다.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보게 된 착장을 저장해두었다가 브랜드를 찾아 들어가 보기도 하고, 핀터레스트에서 마음에 드는 실루엣이나 소재를 따라가다 처음 보는 이름을 발견하기도 해요. 그렇게 하나의 이미지에서 시작해 브랜드 계정과 룩북, 지난 시즌 컬렉션까지 차례로 살펴보다 보면 어느새 그 브랜드의 팬이 되어있는 저를 발견하게 되어요.
그러다 보니 옷을 수집가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 때도 있어요. 단순히 예뻐서 사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지금 아니면 구하기 어려울 것 같은 아이템에 괜히 더 눈길이 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국내에 입점처가 없거나, 시기를 놓치면 더는 구하기 어려울 것 같은 제품을 보면 괜히 마음이 급해집니다. 이미 단종된 옷이나 빈티지 제품을 해외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한참 디깅할 때도 종종 있습니다.
이렇게 늘 새로운 브랜드와 스타일을 찾아다니다 보니, 저 스스로는 옷을 입을 때 다양한 시도를 하는 편이라고 생각해 왔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변 지인들과 옷 구경을 하러 가면 꼭 듣는 말이 있습니다. ‘또 너 같은 거 골랐구나’라고요. ‘너 같은 거’라니, 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저는 매번 새로운 옷을 샀다고 생각했는데 남들 눈에는 똑같아 보였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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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은 생각보다 솔직합니다. 내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결국 손이 가는 것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꽤 정확하게 보여주거든요. 처음에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그동안 비슷한 옷을 사면서 돈낭비를 한 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에 조금 민망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꼭 그렇게 볼 일은 아니겠더라고요. 비슷해 보이는 옷이어도 하나하나 실제로 잘 입고 있다면, 그건 낭비라기보단 제가 옷을 고르는 기준이 그만큼 확고하다는 얘기일 테니까요.
저에게는 플리츠 스커트가 그런 아이템입니다. 연회색부터 차콜색까지, 기장도 조금씩 다르고 소재감도 달라요. 같은 회색 플리츠 스커트처럼 보여도 봄여름용과 가을겨울용이 따로 있고, 브랜드도 제각각입니다. 그런데 한데 모아놓고 보면 결국 모두 ‘회색 플리츠 스커트’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이게 되더라고요. 제 눈에는 전부 다른 옷인데, 남들이 보기에는 비슷한 옷이 계속 늘어나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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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다른 옷이라니까요? (이미지 편집 : 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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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저는 옷 하나를 따로 떼어놓고 보기보다는, 그 옷이 제 평소 스타일 안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하는 편입니다. 브랜드의 룩북은 그 옷이 가장 잘 돋보일 수 있도록 최선의 스타일링과 구도를 만들어놓았을 뿐, 그 옷을 입은 저에게 얼마나 잘 맞을지는 보장이 되지 않는 거잖아요. 하나의 아이템이 마음에 들어서 샀더니 결국은 룩북대로 입지 않으면 안 사느니만 못한 경우도 왕왕 있고요. 그러다 보면 결국 옷을 사더라도 ‘입을 게 없다’는 굴레에 빠지기 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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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는 나름의 가벼운 원칙을 몇 가지 세워두고 옷을 사려고 노력해요. 첫 번째는 활용도입니다. 이 옷을 샀을 때 최소 3가지 이상의 착장이 떠오르지 않으면 사지 않는 거예요. 예를 들어 블라우스라고 하면 이 옷을 지금 가진 어떤 바지와 입을 수 있을지, 어떤 아우터와 겹쳐 입을 수 있을지 등등, 언제 어떻게 입을 수 있을지를 구체적으로 상상해 본 뒤에야 구매를 결정하는 겁니다. 특히 이 기준은 하나의 아이템에 꽂혀서 고민이 많이 될 때 가장 도움이 되곤 합니다.
또 다른 원칙은 편안함이에요. 이 옷을 생활 면에서 편안하게 입을 수 있는지 따져 보는 겁니다. 아무리 마음에 드는 옷이라도 입었을 때 불편하면 결국 손이 가기 어렵잖아요. 편안함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의 경우에는 걸을 때 자꾸 신경 쓰이는 부분은 없는지/오래 앉아 있거나 움직일 때 불편하지는 않은지/입고 나갔을 때 계속 옷매무새를 점검해야 하지는 않는지/세탁이나 관리가 지나치게 까다롭지는 않은지를 생각해보는 편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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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제가 옷을 고르는 기준은 ‘이 옷이 얼마나 특별한가’라기 보다, ‘내가 이 옷을 얼마나 자주, 편하게, 만족스럽게 입을 수 있는지’에 훨씬 가깝습니다. 아무리 예쁜 옷이라도 입고 나갈 기회가 거의 없다면 결국 옷장 안에서 존재감이 흐려지기 마련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비슷한 옷이 자꾸 늘어나는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잘 입고 있는 스타일의 변주를 계속 찾게 되는 것이니까요.
물론 이 기준이 늘 단단하게 유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SNS에서 본 누군가의 옷차림이 너무 멋지게 느껴지면, 평소에는 고르지 않았을 아이템이 갑자기 갖고 싶어질 때도 있어요. 요즘은 새로운 스타일을 발견하고 시도하기에 정말 좋은 시대잖아요. 인스타그램 피드를 조금만 들여다봐도 내가 몰랐던 취향의 브랜드, 생각하지 못했던 컬러 조합, 지금껏 입어보지 않은 무드의 옷들을 얼마든지 접할 수 있죠. 그 안에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 정도는 나도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순간이 생기고요.
문제는 저장해둔 이미지 속 옷과 실제의 내 생활이 꼭 같지는 않다는 데 있습니다. 사진 속의 사람들은 대체로 그 옷이 잘 어울리는 체형이거나, 그 옷을 멋있게 소화할만한 헤어나 메이크업을 연출하고, 그 옷이 빛날 수 있는 배경을 선정해 보여주는 거잖아요. 그걸 알면서도 사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제가 세워둔 기준이 흐릿해지기 쉬운 것 같아요.
저도 그런 마음으로 평소라면 쉽게 고르지 않았을 아이템을 산 적이 있어요. 사진으로 봤을 때는 활용도도 좋아 보이고, 직접 입어보았을 때 심지어 너무나 가볍고 편하기까지 했던 어느 브랜드의 블라우스와 스커트 셋업이었어요. 평소 좋아하던 인플루언서가 찰떡같이 소화한 모습을 보고 쉽게 구매를 결정했는데, 막상 제 옷장에 넣어두고 보니 평소에 입는 옷들과 함께 매치하기가 너무 어렵더라고요. 그렇게 후회를 하다가 결국은 몇 번 입지 못한 채 중고로 팔고 말았고요.
그래서 그때의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아, 내가 세워둔 기준이 역시 괜한게 아니었구나’ 하고 다시 한번 기준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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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옷 입는 것은 여전히 즐거운 일입니다. 계절이 바뀔 때 어떤 옷을 꺼낼지 생각하는 것도, 평소 가지고 있던 옷들을 새롭게 조합해 보는 것도 좋아해요. 가지고 있던 옷들로 괜찮은 착장을 발견해 마음에 드는 모습으로 외출하는 날이면 그날의 기분이 꽤 크게 달라지기도 합니다. 중요한 약속이 있으면 무슨 옷을 입을지부터 고민하고, 생일이 되면 좋아하는 브랜드의 제품을 가장 먼저 위시리스트에 올리게 되는 저는, 확실히 옷을 통해 기분을 만들고 즐거움을 얻는 사람인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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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저는 Auralee로만 이루어진 옷장을 상상해 보곤 합니다 (© 츠즈키 쿄이치, Happy Victims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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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좋아한다고 해서 모든 옷을 다 살 수는 없고, 마음에 든다고 해서 모두 잘 입게 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는 예전보다 더 잘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요즘은 ‘이 옷이 마음에 든다’라고 느끼는 이 감정이 정말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잘 찍힌 사진을 보고 뒤늦게 따라 생긴 마음인지 한 번쯤 더 의심해보곤 합니다. 아무래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과 잠시 좋아한다고 믿게 된 것을 구분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더라고요.
선택지가 너무 많아진 탓도 있을 거예요. 요즘은 여러 패션 플랫폼과 SNS를 통해 새로운 브랜드와 스타일을 너무 쉽게 접할수 있게 되었잖아요. 국내 브랜드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예전 같으면 해외 직구나 구매대행을 해야 만날 수 있었던 브랜드들도 전보다 훨씬 가까워졌어요. 그만큼 새로운 취향의 자극은 많아졌고, 그 안에서 내 취향과 외부의 자극을 구분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예전보다 한 번 더 멈춰보게 됩니다. 예쁘지만 자주 입지 않을 것 같은 옷, 지금 가진 옷들과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아이템, 이미 비슷한 옷이 옷장 안에 충분히 있는 경우라면 특히 더 그렇습니다. 예전에는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면 일단 가까이 두고 싶다는 생각이 앞섰다면, 이제는 그 마음과 실제 생활 사이를 조금 더 차분하게 들여다보게 된 것 같아요. (이번 레터를 쓰면서도 여러 번 반성하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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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고민을 반복하다 보면 결국 르메르라는 합의점을 찾게 됩니다. (© lema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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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옷장을 정리하며 새삼 느끼게 된 것도 결국 비슷한 결론이었어요. 옷장은 단지 옷을 넣어두는 공간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선택을 반복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에 가깝다는 것을요. 무심코 사 모은 것 같았던 옷들 안에도 내가 편안하게 느끼는 모양, 자꾸 손이 가는 색, 만들어가고 싶었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쌓여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취향이란 건 어쩌면 그렇게 만들어지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매번 새로운 것을 찾는 것 같아도, 결국에는 나다운 것으로 자꾸 돌아오게 되고, 그 반복이 쌓여서 어느새 나라는 사람의 스타일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제가 계속 비슷한 옷을 고르게 되는 일도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올해 저는 또 어떤 옷에 끌리고, 또 어떤 옷들을 입으며 즐거움을 느끼게 될까요. 내년 봄, 또다시 비슷한 옷을 꺼내 들더라도 그때는 조금 다른 마음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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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나나>의 코멘트
이번 레터를 쓰면서 이 영상을 가져오지 않을 수 없었어요. 미란다 프리슬리와 안나 윈투어의 만남이라니! <악프다> 이후 20년간 세상은 변했지만 두 사람의 아우라는 여전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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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업문의 augustletter0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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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oe • 구현모 • 찬비 • 오리진 • 요니 • 장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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