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간과 가오가이가, 멈춘 용자들이 어른의 취향으로 돌아온 이야기 구현모 "지구를 지켜주는 용자지만, 그걸 사면 제 통장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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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에디터 구현모입니다.
오늘은 저의 오래되고 가장 정겨운 취향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어쩌면 제 삶의 역사와도 함께 하는데요. 바로 용자로봇입니다. 거두절미하고 바로 들어가죠.
아, 들어가기 전에 잠깐만요. 용자로봇을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한 줄만 덧붙입니다. 건담은 아시죠? 그 건담을 만든 선라이즈가 90년대에 매년 내놓던 로봇 애니메이션이 있고, 트랜스포머의 다음 주자를 노리던 완구 회사 타카라가 그 뒤에 있었습니다. 그게 용자로봇입니다. 이제 진짜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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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용자로봇이란 무엇인가
2. 내가 좋아한 세계는 왜 끝났을까
3. 용자는 부활하니까 용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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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자'는 勇者, '용감한 자'라는 뜻입니다. 일본어로는 '유샤'라고 읽습니다. 우리말 '용사'와 같은 한자죠. 그러니까 용자로봇이란 말 그대로 용감한 로봇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름부터가 스포일러입니다. 용감할 것이 분명한 로봇들이 나오니까요.
그러면 그 용감한 로봇이 뭔가요? 물으면 ⟨다간⟩과 ⟨가오가이가⟩를 말합니다. 그러면 바로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90년대 키즈들이 한국 TV에서 봐왔던 로보트 만화를 지칭합니다. 그중 ⟨다간⟩, ⟨선가드⟩처럼 선라이즈에서 출발한 시리즈를 일반적으로 용자로봇이라고 말합니다. 로봇 만화물의 한 장르이자, 프랜차이즈입니다. 여성분들이 ⟨웨딩천사 피치⟩나 ⟨천사소녀 네티⟩를 볼 때 남성분들은 이 시리즈를 봤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이 용자 프랜차이즈로 ⟨다간⟩, ⟨선가드⟩, ⟨마이트가인⟩, ⟨K캅스⟩, ⟨골드런⟩, ⟨다그온⟩, ⟨가오가이거⟩가 있습니다. 용자물의 효시인 ⟨엑스카이저⟩를 제외한 대부분이 KBS, SBS, MBC 등 지상파 3사를 통해 송출됐습니다. 즉, 일본에서만 인기 있던 게 아니라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시리즈는 전설의 용자 다간과 가오가이가일 것입니다. 다간은 외계 존재인 오보스로부터 지구의 에너지를 지키기 위해 지구의 분신으로 용자가 현현해 악당과 싸우는 이야기입니다. 가오가이가 역시 지구를 침공하는 우주의 괴물과 싸우는 이야기인데, 여타 시리즈와 달리 주인공이 직접 용자 로봇이 되는 게 특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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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용자로봇이 탄생하고 계속된 데에는 '돈'이 있습니다. 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팔지만 뒤에는 어른들의 사정이 있기 마련이죠. 이 용자로봇을 관리한 회사는 선라이즈와 타카라입니다. 선라이즈는 1972년에 만들어진 일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입니다. 점보트, 다이탄, 건담, 라이징오, 사이버포뮬러 등 유수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했습니다. 타카라는 지난 1955년에 설립된 일본의 완구 제조업체입니다. 원래 해즈브로와의 제휴를 통해 트랜스포머 완구의 제조 및 유통을 맡았습니다.
건담, 그랑죠 등 유수의 로봇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던 선라이즈는 새로운 차세대 시리즈가 필요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타카라는 ⟨트랜스포머⟩ 다음을 책임질 완구가 필요했습니다. 해외 판권에 얽매이지 않고 직접 설계해 팔 새 로봇 말입니다. 두 회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1990년 ⟨용자 엑스카이저⟩가 나왔습니다. 대개 모든 일이 그렇듯, 잘 되니까 멈출 수 없었습니다. ⟨엑스카이저⟩의 성공 이후 다음 용자가 탄생했고, 그다음 용자도 탄생했고, 또 그다음 용자도 탄생했습니다.
이 성공은 90년대 어린이 콘텐츠 산업이 돌아가던 방식과 맞물렸습니다. 지금은 애니메이션이 흥행한 뒤 굿즈가 나오는 순서를 먼저 떠올립니다. 용자 시리즈는 순서가 달랐습니다. 완구와 애니메이션이 처음부터 한 몸이었습니다. 단순화해서 말하면 타카라가 변신 구조와 합체 방식을 만들면 선라이즈는 그 기계에 성격과 목소리와 사연을 붙였습니다. 즉, 처음부터 팔릴 만한 장난감과 캐릭터를 전제로 콘텐츠를 기획한 상당히 선진적인 작법입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콘텐츠가 손님을 모으고 돈은 장난감 매대에서 벌었습니다. 지금의 콘텐츠씬도 저 수칙을 알지만, 수행하기 어려운데 당시의 선라이즈와 타카라가 해냈습니다.
용자로봇과 연계된 완구의 백미는 합체씬 연출에 있습니다. 초기 시리즈가 약 60%의 구현도를 자랑했다면, 가장 마지막 시리즈인 ⟨다그온⟩은 애니메이션의 합체씬을 현실에서 거의 그대로 구현할 수 있었습니다. 이 말인즉슨 저는 화면에서 보던 장면을 거실 바닥에서 재현하고 싶어 했고, 부모님은 제 징징거림에 못 이겨 로봇 완구를 사주셔야만 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장사치인데 솔직히 콘텐츠도 재밌었습니다. 애니메이션도 허투루 만들지 않았으니까요. 장난감을 갖고 싶게 하려면 먼저 로봇을 사랑하게 해야 했습니다. 아, 물론 8년 동안 똑같은 짓만 한 것도 아닙니다. ⟨용자경찰 제이데커⟩, 한국명 ⟨K캅스⟩에서는 합체에 실패하거나, 동료끼리 부딪치기도 했고, 주인공이 죽은 뒤 악의 로봇으로 부활하기도 했습니다. ⟨다간⟩의 세븐체인저와 ⟨골드런⟩의 캡틴 샤크와 ⟨가오가이가⟩의 제이아크처럼 소위 빌런이 보여주는 낭만과 멋도 점점 커져 갔습니다. 마지막 TV판 ⟨용자왕 가오가이가⟩는 아예 방향을 틀었습니다. 더 뜨겁고 비장한 이야기를 담아서 연출은 물론이고, 세계관 역시 좀 더 어두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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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 세계는 왜 멈췄을까요. 우선 동업 이슈가 있습니다. 1994년, 타카라의 경쟁사인 반다이가 선라이즈 지분 투자에 참여했습니다. 선라이즈는 타카라와 용자를 만들고 있었는데 회사의 주인은 타카라의 완구 경쟁사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당장 제작이 멈추지는 않았고 이후에도 네 작품이 나왔습니다. 다만 애니메이션 제작사와 완구 스폰서가 한배를 탔던 초기 구조는 오래가기 어려워졌습니다.
다른 하나는 소비자 취향의 변화입니다. 1995년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로봇 애니메이션을 청소년과 성인의 언어로 바꿨습니다. 1997년에는 ⟨포켓몬스터⟩ TV 애니메이션이 시작됐습니다. ⟨에반게리온⟩과 ⟨포켓몬⟩은 서로 정반대 방향에서 용자의 자리를 좁혔습니다. ⟨에반게리온⟩은 로봇을 아이의 장난감에서 청소년과 성인이 해석하는 작품으로 끌어올렸습니다. 반대로 ⟨포켓몬⟩은 어린이 시장을 더 잘게 쪼갰습니다. 용자물도 훌륭한 시리즈였으나 일본 서브컬쳐의 역사를 바꾼 ⟨에반게리온⟩과 전 세계 1황을 다투는 IP가 만들어낸 거대한 파도 앞에서 쓸려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판이 바뀌었고, 용자물은 너무나 촌스러워졌습니다. 비즈니스도 그렇습니다. 쉽게 말해 151종 스티커를 파는 포켓몬빵 비즈니스 앞에 끽해야 시리즈당 7~8개의 로봇을 파는 용자물 비즈니스는 너무나 구식으로 보입니다. 부모님 입장에서도 몇천 원짜리 포켓몬빵은 쉬이 사줄 수 있지만, 몇만 원짜리 장난감은 사주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지금까지 이어지는 포켓몬카드 열풍을 겹쳐보면 차이가 더 선명해집니다. 포켓몬카드는 한 팩을 사기 위해 오픈런을 하고, 뽑은 카드의 등급과 희귀도에 따라 정가를 훌쩍 넘는 값에 거래됩니다. 한 장을 얻는 순간 다음 한 장이 필요해지는 구조죠. 용자가 큰 상자 몇 개를 파는 장사였다면, ⟨포켓몬⟩은 작은 결제를 오래 이어가는 장사였습니다. 카드 한 팩, 스티커 한 장, 가챠 한 번. 지금 와서 복기해보면 두 비즈니스의 차이는 '완성'에 있습니다. 용자 완구는 최종 합체를 이루면 목표가 끝납니다. 반면, ⟨포켓몬⟩은 한 마리를 얻는 순간 다음 한 마리가 필요해집니다. 결과적으로 시장은 작은 결제를 오래 이어가는 쪽으로 움직였습니다. 이렇게 보면, 용자물이 지금 시대에 빛을 못 보는 이유는 수익화 모델의 한계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용자물을 좋아하시는 분은 과거 tkbr.wo.to(재바리의 tkbr)라는 웹사이트를 기억하실 겁니다. 저는 어릴 적 용자물에 대한 정보를 그 사이트에서 찾았습니다. wo.to라는 도메인이 말하듯 정말 오래전에 만들어진 사이트인데요, 그 사이트 역시 어느 순간이 지나고 폐쇄됐습니다. 이런 서브컬쳐 장르는 시리즈가 멈출지언정 소위 팬 커뮤니티를 통해서 커져야만 했는데, 그 붐도 받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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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자물은 멈췄지만 그걸 보던 소년들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늙크크가 됐고 돈을 좀 벌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더 비싸지고, 더 삐까뻔쩍해진 완구들이 돌아왔습니다. 실제로 많은 키덜트 유튜버들이 용자로봇 시리즈를 모으고 있고, 일반 소비자들도 구매하고 있습니다. 이게 구매력이 어느 정도냐면, 다간 시리즈의 주요 로봇 중 하나이던 페가서스 세이버의 피규어가 무려 15억 원어치가 판매됐습니다.
사실, 멈춘 IP가 다시금 완구를 내기는 꽤 어렵습니다. 일반적으로 완구는 많이 만들어 비교적 낮은 가격에 팔아야 합니다. 반면 성인 수집품은 수량이 적고 가격이 높아도 팔립니다. 예전에는 가지고 놀려고 샀고 지금은 기억을 보존하려고 사기에 상대적으로 지불 의사가 높습니다.
리셀 시장도 있습니다. 2000년대 말만 해도 중고 장터에서 구형 DX 완구를 비교적 현실적인 가격에 구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상태 좋은 'DX 세븐체인저'나 'DX 가오가이가' 같은 인기 제품에 수십만 원이 붙고, 풀세트와 미개봉품은 백만 원 단위를 부르기도 합니다. 저도 피규어를 모으고 싶지만 가격을 보면 마음을 접습니다. 지구를 지켜주는 용자지만, 그걸 사면 제 통장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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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피규어를 못 모으는 사람들의 추억털이는 게임에서 대신합니다. 바로 '슈퍼로봇대전' 시리즈입니다. 1991년에 시작해 30년 넘게 이어진 이 시리즈는, 서로 다른 로봇 애니메이션의 주인공과 기체가 작품의 경계를 넘어 한 팀이 되어 싸우는 시뮬레이션 RPG입니다. 쉽게 말해 ⟨건담⟩, ⟨마징가⟩처럼 원래라면 만날 수 없는 로봇들로 나만의 부대를 꾸리는 게임이죠. 용자를 몰랐던 사람도 여기서 처음 만납니다. 건담 옆에 세워둔 가오가이가의 필살기 연출을 보고 "이 로봇 뭐지?" 하며 원작을 찾아가는 식입니다.
이 슈퍼로봇대전 시리즈에서 제가 좋아하는 용자를 메인 기기로 삼아서 퀘스트를 진행하는 것이 제 추억털이입니다. 어쩔 때는 ⟨마징가⟩로, 어쩔 때는 ⟨가오가이가⟩를 주력 기기로 삼아 플레이하면 과거 유소년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이 듭니다. 이처럼 이 용자로봇 게임이야말로 어른이 된 팬에게 가장 현실적이고, 경제적이고, 부피도 먹지 않는 완구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그동안 새로운 시리즈가 나오지 않은 용자물이 지금까지 회자되는 데에는 이 게임 시리즈의 기여가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은 방영이 끝나면 새로운 시청자를 만나기 어렵지만 게임은 서로 다른 시대의 로봇을 한 화면에 세웁니다. ⟨가오가이가⟩를 보지 않은 세대도 필살기 연출을 보고 원작을 찾아갑니다. 게임 한 편이 새 완구의 진열장과 옛 애니메이션의 재방송 노릇을 함께 했습니다. 앞서 말한 성인용 완구가 다시 나오는 데엔 이런 배경도 있습니다. 반다이는 2010년대 '슈퍼로봇 초합금' 같은 성인용 제품군으로 용자들을 다시 불러냈습니다.
2023년에는 웹코믹 ⟨용자우주 소그레이더⟩ 연재도 시작됐습니다. ⟨가오가이가 FINAL⟩ 이후 20년 넘게 지나 등장한 정통 신작이자 역대 용자들이 만나는 크로스오버입니다. 매주 TV 앞에 아이들을 모으는 대신 이미 모든 이름을 아는 어른들을 웹으로 불렀습니다. ⟨다간⟩과 ⟨가오가이가⟩가 30~40대 아저씨들 안에 있는 소년들을 부르는데 어떻게 가지 않을 수 있을까요.
용자 시리즈에는 90년대 어린이 산업이 압축돼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한 편이 장난감 한 대를 팔고 장난감 한 대가 다음 애니메이션을 만들던 시대였습니다. 매주 같은 시간에 TV 앞에 앉아야 했고 친구 집 로봇과 제 로봇을 같이 세우던 시대였습니다. 지금 아이들은 다른 방식으로 놉니다. 거대한 로봇 하나보다 수백 개의 캐릭터를 모으고 TV 편성표보다 유튜브 알고리즘을 따릅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영웅과 회사가 파는 방식이 달라졌을 뿐입니다.
용자물에는 30대가 없습니다. 어쩌면 용사들에게 낭만을 느끼지 않는 나이대라서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용자의 용기, 낭만, 우정에 감화되기에는 우리는 너무나 현실에 찌들어있고, 좋은 명분과 감정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어른들의 사정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저는 지금도 용자물이 좋습니다. 현실에서 볼 수 없는 낭만을 가상의 공간에서 느낄 수 있고, 아주 잠깐이라도 과거의 저를 떠올릴 수 있으니까요.
유치할지언정 낭만적인, 뻔할지언정 구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용자물, 한 번 시작해보실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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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구현모>의 코멘트
화면에서 보던 로봇을 거실 바닥에서 재현하던 소년은, 이제 게임 속에서 다간과 가오가이가를 다시 만납니다. 그레이트 다간 GX의 무장 연출로 잠깐 추억을 꺼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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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oe • 구현모 • 찬비 • 오리진 • 요니 • 장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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