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되면 사랑이라는 책임을 지는걸까 안녕하세요, 에디터 장희수입니다. 제가... 그거거든요? 결혼적령기... 그래서 결혼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결혼은 참 롤모델을 찾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어떤 결혼이 오래 유지되고 있다고 해서 그 방식이 누구에게나 잘 맞는 것도 아니고, 사람마다 원하는 삶의 모습도, 관계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다르니까요. 결국 자신에게 필요한 결혼은 각자 조금씩 다른 모양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연애와 결혼에 관한 예능 프로그램이 참 많이 생기긴 했지만, 시청률을 위한 편집이 깊은 생각이나 깨달음을 주는 데 방해가 될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저는 성격상 무언가를 시작할 때 그냥 몸부터 던지는 편은 아닙니다. 관련된 책도 이것저것 읽어보고, 먼저 해본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고, 머릿속에 나름의 모델을 하나 만들어본 뒤에 들어가는 걸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번 여름에는 결혼과 가족을 제 나름의 작은 사이드 프로젝트처럼 들여다봤습니다. 사랑과 연애, 결혼과 가족은 어떻게 이어지는지, 좋은 결혼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는 왜 굳이 새로운 가족을 만들려고 하는지. 이번 한우물레터에는 그 여름 프로젝트에서 읽고 생각한 것들을 담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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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랑, 연애, 결혼, 가족 2. 우리는 왜 결혼을 할까
3. 나의 여름 프로젝트, 다섯 권의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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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한 번쯤 쓸 수밖에 없는 덕질 영역은 사랑, 연애, 결혼이 아닌가 싶습니다. 연애란 뭘까? 초등학교 때 저한테는 ‘사랑’이라는 거대한 관념이 아직 없었던 것 같아요. 그때 조숙하던 친구들이 몇 반 누가 누구와 사귄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하기는 했지만, 저한테는 그저 누가 게임기를 샀다더라 하는 이야기처럼 학교에서 벌어진 웃긴 이벤트? 재미있는 이벤트? 정도였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고백하고 고백하는 일도 비슷했습니다. 이성애가 자연스럽고 남녀칠세부동석의 유교 문화가 은은하게 남아있는 사회에서 이성 친구끼리 친구가 되려면 저렇게 하는 건가 보다, 하는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동성 친구끼리는 자연스럽게 취미를 공유하고, 수다를 떨고, 등하교를 같이 하다 보면 친해지는데, 이성 친구끼리는 친해지기 위해서든, 이미 친해진 다음이든, 둘이 ‘단짝이 됐다’는 말이 이상하게 ‘사귄다’는 말과 통용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순전히 초등학교 때 제 생각입니다.
그러다가 중학생이 되고, 로맨스 소설을 읽고 로맨스 영화를 보니까 주인공들이 손을 잡고!!! 뽀뽀를 하는!!! 그런 게 설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아마 미지의 세계에 관한 호기심과 설렘이었던 것 같습니다. 학생 때는 인기의 척도였던 것 같기도 해요. 이성들 사이에서 얼마나 인기가 많다더라, 그 애의 여자친구나 남자친구가 그렇게 잘해준다더라, 하는 이야기들. 누군가와 사귄다는 사실 자체가 그 사람의 매력이나 인기를 보여주는 지표처럼 느껴지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이런 연인관계가 어쩌면 나의 세계를 확장하고, 나의 안전기지가 되어주고, 굉장히 특별한 우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대학교에 온 이후에야 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 대학교에 가면서부터 하루의 많은 부분을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보내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수업을 듣고,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시험을 망치고, 진로 걱정을 하고, 가끔은 정말 별것 아닌 일 때문에 세상이 끝난 것처럼 울기도 하는 그런 시간들. 그러면서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나누기 어려운 이야기를 한 사람에게 오롯이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내가 누구를 싫어하는지, 무엇 때문에 창피했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아무 때나 전화를 걸어도 예의가 아니지 않고, 아무 때나 문자를 해도 되고, 매일매일 만날 수도 있고, 뜬금없이 방문을 두드려도 되는 사람. 애인이라는 거, 연애라는 거, 생각보다 대단한 거잖아? 하고 느꼈던 기억이 있습니다. 서로의 세계를 확장하는 일. 그리고 이쯤 되면 애인은 이미 가족 같은 존재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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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는 이유도 생각보다 다양하네요! (출처: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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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가족이 무엇인지에 관해 아직 진지한 고민을 하기 전의 일이긴 합니다. 잘 모르지만, 좋아하는 마음이 더 특별해지면 사랑이 되는 거고, 그런 사람과 연애를 하니까 연인이 되는 거고, 그 연인의 다음 단계가 가족이 되는 거겠지? 그렇게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연애하는 동안 조금씩 가족이 되어가는 것이고, 그 사실을 세상에 공표하는 것이 결혼식인 것 같기도 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연애를 하고, 오래 연애하면 결혼을 하고, 결혼하면 가족이 된다. 너무 자연스러운 순서였습니다.
그러다 20대 후반이 되고, 서른이 되고, 맞선을 보고 결정사에 등록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친구들은 ‘결혼이라는 현실적인 벽’ 앞에서 장기연애를 하던 애인과 헤어지고, 결정사에서 만난 다른 사람과 반 년 만에 결혼했다고 했습니다. 또 어떤 친구들은 스무살 때부터 CC로 사귀던 애인과 결혼을 하고나서 정말 새로운 사람을 본 것 같다고 했습니다. 어떤 현실적인 벽이 있다고요. 결혼은 현실이다, 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습니다.
현실? 처음 듣는 얘기였습니다. 그럼 이전까지의 연애는 현실이 아니었던 건가요? 20대에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고 연애를 시작하면서 현실적인 벽 이야기를 하는 걸 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결혼 이야기에는 직업, 돈, 부모, 지역, 아이, 종교, 생활방식 같은 것들이 갑자기 잔뜩 등장했습니다. 그럼 정말 연애는 결혼으로 가는 길이 아니었던 걸까요? 그럼 사랑은? 연애가 사랑이 아닌 걸까요, 결혼이 사랑이 아닌 걸까요? 사랑과 연애와 결혼과 가족이 사실은 서로 다른 것이었다면, 이 중요한 걸 왜 아무도 얘기 안 해준 거지?
생각해보면 결혼은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일인데, 그동안은 결혼에 관해 이야기할 때 가족보다 연애 이야기를 훨씬 더 많이 해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오래 연애하고, 프러포즈를 하고, 결혼식을 올립니다. 영화도 드라마도 대체로 거기에서 끝납니다.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고, 연애의 결실처럼 그려집니다.
그런데 정말 결혼이 가족을 만드는 일이라면, 그 전에 더 많이 이야기했어야 하는 것은 가족에 관한 얘기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어떤 가족에서 자랐는지. 가족 안에서 갈등을 어떻게 배웠는지. 부모와 얼마나 가까이, 혹은 멀리 지낼 것인지. 상대의 부모는 나에게 어떤 사람이 되는지. 돈과 돌봄과 집안일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아이를 낳을 것인지. 서로의 원가족과 새롭게 만드는 가족 사이에는 어떤 경계를 둘 것인지. 이런 이야기는 이상하게도 결혼이 아주 가까워지고 나서야 갑자기 등장합니다. 그전까지는 사랑이 충분하면 되는 것처럼 이야기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현실적인 문제’라는 이름의 것들이 우르르 나타납니다.
결혼이 가족을 만드는 일의 시작이라면, 가족이라는 개념에 관해 좀 더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여름프로젝트로 덕질을 좀 해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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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번 여름에 다양한 책들을 읽으면서 답을 내리려고 했던 세 가지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우리는 왜 원가족이 있는데도 결혼을 해 새로운 가족을 만들게 됐을까 2. 좋은 결혼이란 뭘까
3. 사랑은 결혼의 조건일까 결과일까
하나씩 한 번 나름의 답을 써내려가보고, 그다음에 이런 생각의 결론에 이르게 해준 책들을 소개하면서 이번 뉴스레터를 마무리지어볼까 하는데요.
1. 우리는 왜 원가족이 있는데도 새로운 가족을 만들까
이미 가족이 있는데 왜 또 가족을 만드는 걸까? 태어나면서 생긴 가족은 특별합니다. 내가 선택하지 않았는데도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래된 사람들이고, 웬만한 인간관계에는 없는 종류의 책임과 의무가 따라붙습니다. 싸운다고 쉽게 헤어질 수도 없고, 오랫동안 만나지 않아도 어느 날 다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옵니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나면 많은 사람들이 그 가족으로부터 조금씩 떨어져 나옵니다. 독립해서 살고, 자기 돈을 벌고, 자기 삶의 중요한 결정을 부모와 다르게 내리기 시작합니다. 예전에는 이것을 그냥 ‘독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족에 관한 책들을 읽으면서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원가족과 관계를 끊는 일이 아니라, 원가족이 더 이상 내 삶의 최종 결정권자가 아니게 되는 과정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부모가 걱정한다고 해서 반드시 선택을 바꾸지 않아도 되고, 부모가 섭섭해한다고 해서 내가 잘못한 것은 아닐 수도 있고, 부모가 생각하는 좋은 삶과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삶이 달라도 됩니다.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그 가족과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그렇게 원가족에서 조금씩 분리되면서 꼭 혼자가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또 다른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친구가 생기고, 연인이 생기고, 어떤 사람과는 어느 순간 ‘나’와 ‘너’뿐 아니라 ‘우리’라는 단위를 상상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의 저는 새로운 가족을 만든다는 것을 원가족을 버리고 다른 가족으로 갈아타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조금 더 정확히는, 처음으로 내가 선택한 방식의 가족을 만들어보는 일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원가족에서는 이미 많은 것들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누가 부모이고 누가 자녀인지, 누가 몇 살 더 많은지, 어떤 집에서 사는지, 우리 집에서는 갈등이 생기면 어떻게 하는지. 저는 그것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가족에서는 적어도 일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싸울 것인지. 돈을 어떻게 쓸 것인지. 부모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둘 것인지. 아이를 낳을 것인지. 서로의 일은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할 것인지. 사랑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 것인지. 그런 면에서 결혼은 창업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나는 어떤 가족을 만들어보고 싶은 사람인가를 결정하는 일이라는 점에서요.
여기에는 중요한 지점이 하나 있는데요, 우리는 새로운 가족을 만들겠다고 원가족에서 걸어나오는데, 정작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방법은 상당 부분 원가족에서 배운 채로 나온다는 거예요. 양육의 목표는 독립이라던데, 돈을 벌고 따로 나와 사는 일과 원가족과의 독립을 이뤄낸 자아를 갖는 일은 아예 다른 영역이더라고요. 그래서 새로운 가족을 형성할 때 원가족과의 관계를 바라보는 일이 중요하다고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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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좋은 결혼이란 뭘까
엄청 많이 좋아한다고 해서 좋은 관계가 보장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은, 저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도 연애를 하면서 한 번쯤은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아예 ‘정병연애’라는 말도 있잖아요. 너무 좋아해서 서로를 더 불안하게 만들고, 더 집착하게 되고, 더 많이 상처 주고받는 관계. 좋아하는 마음은 큰데 이상하게 둘이 같이 있으면 점점 더 힘들어지는 관계요. 누군가를 많이 좋아하는 것과 그 사람과 갈등을 잘 해결하는 것, 상대를 존중하는 것, 서로의 다름을 견디는 것, 일상을 같이 운영하는 것은 전혀 다른 능력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결혼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할 때도, 저는 점점 ‘얼마나 사랑하는가’보다 ‘어떻게 함께 있을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이번에 읽은 책들에서 계속 만난 단어가 ‘분화’였어요. 분화란 사랑하면서도 나일 수 있는 것, 가까우면서도 각자일 수 있는 것, 싸우면서도 관계가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상대가 나에게 실망했다고 해서 내가 곧바로 무너질 필요는 없고, 상대의 기분이 나쁘다고 해서 그것을 전부 내가 해결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한다고 해서 관계 전체가 틀린 것도 아니고요. 가까워지되 서로를 삼키지 않는 것이죠. 어쩌면 좋은 가족에는 이런 능력이 꽤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생각하게 된 것이 있습니다. 현대사회에 사는 우리는 배우자 한 사람에게 정말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가장 친한 친구여야 하고, 가장 재미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가장 편한 사람이어야 하고, 나를 가장 잘 이해해야 하고, 나를 성적으로도 끌리게 해야 하고, 어려울 때는 상담자도 되어야 하고, 같이 집안일을 하는 동료이자 경제적 파트너이며, 아이를 낳는다면 공동 양육자이기도 해야 합니다. 가끔은 부모님과도 잘 지내야 하고, 내 커리어도 응원해야 하고,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성장시켜주기까지 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쓰고 보니 정말 어마어마한 채용공고입니다. 결혼이 엄청난 숙제처럼 느껴지는 게 당연하네요.
그런데 현대 사회 이전에는 꼭 이렇지는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집안 간의 명예가 중요할 수도 있고, 재정적 안정이 중요했을 수도 있고... 보통 한 가지를 요구하고 대가족 속에서 다른 역할은 다른 가족원이 해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점차 핵가족화 되면서 배우자의 역할이 점점 커졌다고 해요. 이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저는 결혼에 관한 환상을 좀 내려놓을 수 있더라고요. 아 사실 이건 나도 다 못하는 역할들이고, 상대방에게도 벅찬 역할일 수 있겠다. 서로에게 숨쉴 구멍을 좀 줘야겠다...
무엇보다, 좋은 결혼은 특별한 날보다 평일을 잘 살아내는 관계인 것 같습니다. 인스타그램에서 연애의 모습은 여행이나 데이트나 키스나 결혼식 같은 장면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가족의 대부분은 월요일과 화요일과 수요일입니다.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택배를 뜯고, 쓰레기를 버리고, 한 사람은 피곤하고 한 사람은 아직 말을 하고 싶고, 다음 날 아침에 또 출근해야 합니다. 누군가와 가족이 되고 싶다는 말은 결국 그 사람과 특별한 순간을 많이 보내고 싶다는 말보다, 그 사람과 별일 없는 날들을 오래 보내고 싶다는 말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좋은 결혼은 서로를 잃지 않으면서도 자기 자신도 잃지 않는 관계, 그리고 그 상태로 평범한 날들을 오래 살아낼 수 있는 관계에 더 가까운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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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랑은 결혼의 조건일까, 결과일까
사랑이 결혼의 조건일까요? 사랑하니까 연애를 하고, 아주 많이 사랑하게 되면 결혼하는 것. 드라마나 로맨스 소설에서는 사랑이 먼저 있고, 결혼은 그 사랑에 이름을 붙이는 일이라고 많이들 해석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랑해서 결혼했다’는 문장은 자연스러웠지만, ‘결혼해서 사랑하게 되었다’는 문장은 어쩐지 낯설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어쩌면 현대사회, 혹은 우리가 처해있는 미디어환경이 사랑이라는 말을 너무 한 가지 의미로만 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을 설렘이나 끌림, 욕망 같은 로맨스적이고 에로스적인 감정으로만 생각한다면, 사실 결혼이라는 제도는 조금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매일 같이 살면 설레지 않는 날이 생길 것이고, 몇 년이고 몇십 년이고 똑같은 강도로 상대를 욕망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사람이 변하기도 하고, 몸도 변하고, 둘 사이의 상황도 계속 달라집니다. 그런데 그런 감정을 평생 유지하겠다는 약속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이번 여름 프로젝트를 하면서 제가 내리게 된 결론은 사랑이 생각보다 굉장히 다층적인 개념이라는 점입니다. 설레는 마음도 사랑이고, 욕망도 사랑이고, 깊은 우정 같은 친밀함도 사랑입니다. 그런데 그뿐만 아니라 돌보고, 기다리고,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상대의 삶을 내 삶의 중요한 일부로 계속 고려하는 것도 사랑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랑은 생각보다 관념적인 감정보다 행위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은 말보다 행동이다’라는 말을 심심찮게 듣잖아요. 예전에는 그냥 “말로 사랑한다고 하지 말고 잘해줘라” 정도의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문장이 어쩌면 로맨스적인 감정을 넘어서는 다른 종류의 사랑을 설명하려는 말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볼 때 특별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에게 어떻게 행동하는가이기도 한 것. 그렇게 생각하면 누군가를 가족으로 선택한다는 것도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가족이 된다는 것은 그 사람이 나에게 좋은 기분을 주는 동안에만 가까이 있겠다는 약속과는 다릅니다. 아프면 돌봐야 할 수도 있고, 내가 가장 바쁠 때 상대도 힘들 수 있고, 상대가 한동안 재미없어질 수도 있고, 내가 처음 사랑에 빠졌던 모습과 많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랑은 결혼의 조건이면서 동시에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가족이 되기로 선택하지만, 가족으로 살아가면서 하는 수많은 행동이 또 다른 종류의 사랑을 만들어냅니다. 밥을 챙기는 것. 늦게 들어오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 아픈 사람과 병원에 가는 것. 상대가 반복해서 하는 지겨운 이야기를 또 듣는 것. 기분이 상했는데도 다음 날 다시 말을 거는 것. 상대가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포기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
가족의 사랑은 로맨틱 이상의 사랑을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저는 사랑을 결혼 전에 완성해두고 가져가는 감정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랑은 결혼의 시작점일 수도 있지만, 가족으로 살아가는 동안 계속 만들어지고, 망가지고, 고치고, 다시 만드는 것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과 가족이 되기로 결정하는 일은 그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어느 정도 우연히 생겨나는 감정의 영역에서 의식적인 선택과 책임의 영역으로 옮기는 일, 굉장히 이성적인 결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랑해서 가족이 되기도 하지만, 가족으로 살아가면서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배우기도 하는... 인생의 거대한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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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결론에 이르기까지... 열 권 정도의 책을 읽었는데, 그 중에서 주제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던 네 권의 책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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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 좋은 날》, 김지윤
《사랑하기 좋은 날》은 김지윤 작가가 자신의 연애 경험과 주변의 사례를 바탕으로, 연애와 결혼을 앞둔 사람들이 흔히 가지는 기대나 두려움, 자존심, ‘좋은 배우자’에 대한 기준 같은 것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는 책입니다. 특히 좋은 상대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는 것보다, 내가 연애를 어떤 태도로 대하고 있는지, 상대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먼저 돌아보게 한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아무래도 크리스천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쓰인 책이라 종교적인 맥락이 꽤 있지만, 그 부분을 걷어내고 읽어도 결국 질문은 꽤 보편적입니다. 나는 사랑을 받을 준비만 하고 있는지, 아니면 누군가를 건강하게 사랑할 준비도 되어 있는지. 같은 질문을 남성독자를 위해 출판한 《고백하기 좋은 날》도 있어요. 저는 두 권 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궁금해지는 부분은 상대가 어떤 사람인가보다 내가 관계 안에서 어떤 사람이 되는가였습니다. 사랑은 상대방이 아니라 결국 나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평소에는 꽤 괜찮고 침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순간 갑자기 불안해질 수도 있고, 별것 아닌 말 한마디에 서운해질 수도 있고,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반대로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내가 생각보다 다정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기도 하고, 내가 어떤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인지 처음 발견하기도 합니다.
관계는 우리를 계속 새로운 환경에 놓이게 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좋아할 때의 나, 누군가가 나에게 실망했을 때의 나, 질투가 날 때의 나, 거절당했을 때의 나, 갈등이 생겼을 때의 나. 평소에는 잘 볼 수 없었던 모습들이 친밀한 관계 안에서는 꽤 선명하게 튀어나옵니다. 그리고 그 상황에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결국 나 자신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계속 알려줍니다.
그래서 사랑은 좋은 상대를 찾는 일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친밀한 관계를 어떻게 맺는 사람인지 계속 알아가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가까워질수록 더 편안해지는 사람인지, 아니면 오히려 불안해지는 사람인지. 상대가 나와 다를 때 그 차이를 견딜 수 있는지. 사랑받고 싶은 마음 때문에 상대를 통제하려 들지는 않는지. 갈등이 생겼을 때 대화를 하는지, 숨는지, 혹은 상대가 먼저 다가오기를 기다리는지.
결국 동시에 저 역시 상대에게 ‘좋은 사람’이어야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상대를 만나더라도 제가 불안과 갈등을 건강하게 다루지 못하고, 상대를 존중하지 못하고, 제 감정을 전부 상대가 해결해주기를 기대한다면 그 관계는 결국 어려워질 수밖에 없겠지요. 좋은 결혼은 좋은 사람 한 명을 찾아내는 것으로 완성되는 게 아니라, 두 사람이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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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허지원
가족과 결혼 이야기를 하다가 왜 자꾸 ‘나’를 이해하는 책으로 돌아오게 될까 싶었는데, 읽다 보니 결국 여기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갈등이 생겼을 때 왜 그렇게 반응하는지, 어떤 말에는 아무렇지 않은데 어떤 말에는 유난히 무너지는지는 결국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과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던 것들 중 많은 부분이, 사실은 타고난 성격이라기보다 오랫동안 반복해서 익힌 반응일 수도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누군가가 화를 내면 바로 사과부터 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방어적으로 굴거나 아예 자리를 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군가의 실망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너무 가까워지면 답답함부터 느끼는 사람도 있고요. 우리는 이런 반응을 성격이라고 부르기 쉽지만, 어쩌면 그중 일부는 내가 살아남기 위해, 혹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아주 오래전부터 익혀온 방식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원가족에 대한 질문도 조금 달라집니다. 원가족이 지금의 나를 완전히 결정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관계를 맺는 방식의 첫 번째 교과서였던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갈등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누군가가 나에게 화가 났을 때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가까운 사이에는 어느 정도까지 서로의 삶에 관여해도 된다고 느끼는지 같은 것들을 우리는 꽤 일찍 배웁니다.
문제는 그때 배운 방식이 지금의 관계에도 여전히 도움이 되는지는 별개의 문제라는 점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갈등을 피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을 수 있지만, 성인이 된 뒤의 관계에서는 오히려 필요한 대화를 계속 미루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상대의 기분을 빠르게 알아차리는 능력이 한때는 중요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상대의 감정을 전부 내 책임처럼 느끼게 만들 수도 있고요.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자기이해’라는 것이 단순히 내 성격을 잘 아는 일이 아니라, 내가 반복해서 하는 반응 중 무엇을 계속 가져갈지 선택하는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가족을 선택할 수는 없었지만, 그 가족 안에서 만들어진 나를 아무 수정 없이 다음 관계에 가져가야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와 새로운 가족을 만든다는 것은 결국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가 익숙하게 반복해온 관계의 방식을 조금씩 다시 배우는 일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누군가와 가족이 되기 전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정확하게 알아가는 일이 왜 필요한지 생각하게 한 책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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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두 얼굴》, 최광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나를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것. 가족과 배우자는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곁을 내어주는 만큼, 가장 나약한 살갗을 오래 맞대고 있는 사이.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고, 가까운 만큼 상처도 깊게 남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은 가족을 따뜻하고 안전한 공간으로만 보지 않고, 오래된 상처와 갈등이 반복되는 공간으로도 함께 보여줍니다. 가족이라는 관계 안에서는 내가 어릴 때부터 익혀온 역할과 감정이 쉽게 다시 살아납니다. 누군가는 늘 참고, 누군가는 늘 중재하고, 누군가는 화를 내고, 누군가는 분위기를 맞추는 식으로요. 시간이 많이 흘러도 가족이 모이면 이상하게 예전의 내가 다시 튀어나오는 순간이 있는 것도 그래서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결혼으로 새로운 가족을 만든다는 일이 더 복잡하게 느껴졌습니다. 사실 우리는 빈손으로 새로운 가족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잖아요. 각자 원가족에서 배운 사랑의 방식, 갈등의 방식, 돈을 쓰는 방식, 사과하는 방식, 침묵하는 방식, 부모와 거리를 두는 방식까지 잔뜩 들고 들어갑니다. 한 사람에게는 너무 당연한 가족의 규칙이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고요.
처음에는 좋은 가족이라면 서로 상처를 주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연인 사이에서도 갈등이 생기면 관계가 잘못된 것처럼 느껴지고, 괜히 무서워지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가까운 관계에서는 아무리 잘해도 서로를 건드리고 실망시키는 순간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곁을 내어준다는 것은 결국 서로에게 상처를 입힐 가능성까지 함께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그렇다면 새 가족을 잘 만든다는 것도 상처 없는 관계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각자가 익숙하게 가져온 방식을 조금씩 알아차리고, 필요하면 수정하고, 둘만의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가는 일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좋은 가족의 기준은 한 번도 서로를 아프게 하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상처가 생겼을 때 그 관계를 어떻게 다시 다루는가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결혼은 내가 태어난 가족의 방식을 그대로 반복하는 일이 아니라, 그중 무엇을 가져가고 무엇은 내려놓을지 함께 선택하면서 새로운 가족의 문법을 만들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가족의 목표를 생각하는 관점도 좀 달라졌습니다. 갈등을 최대한 피하면서 당장의 즐거움과 행복만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한 사람으로서 더 성장하는 과정까지 함께 견디고 지켜보는 것. 배우자와 만들어내는 새로운 가족이라는 관계는 짧은 순간의 행복보다, 서로의 삶이 조금씩 변해가는 긴 시간을 함께 살아내는 데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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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ll-or-Nothing Marriage》, Eli J. Finkel
이번 여름에 읽은 책 중에서는 “왜 배우자 한 사람에게 이렇게 많은 걸 요구하지?”라는 질문에 가장 직접적으로 답해준 책이었습니다. 현대의 결혼에서는 배우자가 같이 먹고살고 아이를 키우는 동료인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가장 친한 친구여야 하고, 나를 정서적으로 지지해야 하고, 성적으로도 만족스러워야 하고, 나를 가장 잘 이해해야 하고, 내가 힘들 때는 상담자가 되어야 하고, 내 커리어를 응원해야 하고, 심지어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성장시켜주기까지 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가만히 쓰고 보니 정말 많은 역할입니다.
이 책이 흥미로웠던 건, 이런 기대가 인간의 결혼에 원래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핀켈은 결혼의 기능이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고 봅니다. 과거의 결혼은 생존과 경제적 안정, 노동의 분담, 자녀 양육 같은 실용적인 기능이 훨씬 컸고, 이후에는 사랑과 동료애가 중요해졌으며, 오늘날에는 배우자에게 자기이해와 자존감, 개인적 성장과 자아실현까지 기대하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배우자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면서도, 그 기대 자체가 꽤 현대적인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은 별로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나를 가장 잘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배우자라면 당연히 내 제일 친한 친구여야 하지 않을까’ 같은 생각을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거죠. 하지만 이 책은 이런 기대가 현대사회의 산물이었다고 말합니다. 배우자와 결혼에 기대하는 바가 점점 커졌다고요. 현대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은 가정에서 배우자가 짊어지길 바라는 부작용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우자가 내 삶의 모든 욕구를 다 채워주지 못한다고 해서 그 결혼이 실패한 것은 아닐 수도 있겠구나. 이건 나도 다 못하는 역할들이구나. 상대에게도 벅찰 수 있겠구나.
오히려 좋은 결혼을 위해서는 배우자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몰아주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이야기는 친구와 나누고, 어떤 성취는 일에서 얻고, 어떤 위로는 가족이나 공동체에서 받을 수도 있습니다. 각자 혼자만의 시간과 세계를 갖는 것도 필요할 수 있고요.
그래서 저는 이 책을 읽고 결혼에 대한 기대를 낮췄다기보다, 기대를 조금 분산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상대에게 숨 쉴 구멍을 주는 것. 나도 숨 쉴 구멍을 갖는 것. 그리고 서로에게 모든 것이 되어주지 못하더라도 여전히 충분히 좋은 배우자일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
한국어판은 《괜찮은 결혼》이라는 제목으로 이미 나와 있습니다. 오히려 읽고 나니 이 책이 한국에서도 훨씬 더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좋은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말은 정말 많이 듣지만, 우리가 왜 배우자 한 사람에게 이렇게 많은 역할을 기대하게 되었는지, 그 기대 중 무엇은 내려놓아도 되는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이야기하니까요. 결혼을 조금 덜 환상적으로, 그렇다고 냉소적이지도 않게 바라보게 해주는 책이라는 점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봤으면 하는 책입니다. 로맨스도, 사랑도, 매일의 현실적인 노력이 필요한 일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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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맺으며...
저는 사실 굉장히 낭만적인 사람이거든요? 낭만 빼면 시체입니다. 여전히 사랑도 결혼도 낭만 없이는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설레고 싶고, 손을 잡으면 기분이 좋았으면 좋겠고, 같이 여행도 가고 싶고, 예쁜 데서 밥도 먹고 싶고, 시간이 지나도 서로에게 특별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결혼을 아무리 현실적인 제도라고 설명해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살림을 합치는 일에는 아직 마음이 가지 않습니다.
다만 이번 여름에는 좋은 결혼, 좋은 가족, 좋은 인생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일부러 한 번 낭만을 옆에 내려놓고 선행연구를 해봤습니다. 사랑의 감정이 얼마나 큰가보다, 갈등을 어떻게 다루는지. 얼마나 잘 맞는 사람인가보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각자의 모습을 잃지 않고 같이 살아갈 수 있는지. 좋은 순간을 얼마나 많이 만드는가보다, 별일 없는 평일을 어떻게 함께 보내는지.
그렇게 읽고 생각하다 보니 낭만이 사라졌다기보다, 오히려 낭만의 범위가 조금 넓어진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사랑의 낭만이라고 하면 누군가가 나를 아주 많이 좋아하는 것, 나를 가장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 둘만 아는 이야기를 만들고 멋진 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을 먼저 떠올렸습니다. 지금은 거기에 조금 다른 장면들도 들어옵니다. 기분이 상했는데도 다시 말을 거는 것. 서로 다른 생각을 끝까지 들어보는 것. 한 사람이 힘들 때 잠시 더 많은 몫을 맡는 것. 각자의 일을 응원하면서도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는 것. 그리고 아무 일도 없는 화요일 저녁에 같이 밥을 먹는 것.
생각해보면 그런 것도 꽤 낭만적입니다.
사랑은 중요합니다. 저는 여전히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사랑하는 마음 하나만 있으면 좋은 가족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좋은 가족을 만드는 데에는 내가 어떤 가족에서 왔는지 돌아보는 일도, 내 감정을 다루는 법을 배우는 일도, 상대가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도, 둘만의 새로운 규칙을 계속 만들어가는 일도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런 노력까지 기꺼이 해보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는 것.
저한테는 그게 가족을 이루고 유지하는 사랑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사랑, 연애, 결혼, 가족을 어떻게 정의하고 계시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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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지만, 한우물클럽에서 발행했던 ' 멘토를 찾는 일에 대하여'에 여러 소감과 소중한 경험을 공유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덕분에 오히려 제 마음이 더 따뜻하게 충전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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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장희수>의 코멘트
아마 제 20대의 사랑관은 플라톤의 《향연》에 나오는 사랑의 기원과 상당히 맞닿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반쪽이 되어 영원히 그리워한다는, 낭만적 사랑의 정의 그 자체였달까요.
영문학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틀어주셨던 《헤드윅》이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바로 이 이야기를 노래하는 장면이 있었는데요. 저는 이상하게도 그날의 바람과 온도, 습도가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9월이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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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oe • 구현모 • 찬비 • 오리진 • 요니 • 장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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