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고 싶진 않은데, 여전히 술을 사랑합니다 안녕하세요, 에디터 Zoe입니다.
오랜 시간 제 최애는 '술'이었어요. 정확히는 와인을 가장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샴페인을 특히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주종을 타는 편은 아니었어요. 맥주, 소주, 막걸리, 사케, 위스키도 딱히 가리지 않을 만큼 꽤 진심이었죠. 임신했을 때 친구들이 축하 인사 다음으로 "술 못 마셔서 어떡해?"라고 물어볼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요즘 좀 이상합니다. 술은 여전히 좋은데 예전만큼 자주 생각나지 않아요. 집에 와인이 있어도 그냥 지나치는 날이 생겼습니다. 좋아하긴 하는데 예전만큼 간절히 만나고 싶진 않은 상태. 아무래도 최애와 권태기가 온 것 같습니다.
과연 '좋아하는 것'과 '원하는 것'은 같은 마음일까요? 이번 레터에서는 술을 핑계 삼아 이 질문을 파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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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번주 금요일🎵 금요일엔 술 한잔 어때요🎵
2. Liking과 Wanting은 다르기 마련(feat. 뜻밖의 위고비)
3. 최애라고 매주 출석 체크를 해야 하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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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인가 제 머릿속엔 '금요일 = 술'이라는 공식이 자리잡았어요. 저에게 술은 특별한 날에만 등장하는 이벤트가 아니었거든요. 오히려 일상을 구성하는 ‘디폴트 값’에 가까웠습니다. 특히 일이 정말 힘든 주에는 퇴근하기도 전부터 "아 오늘은 무조건 달린다"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어요. 일이 잘 풀렸으면 수고했다는 의미로 마셨고, 일이 엉망이었으면 이 정도는 마셔야 버틴다는 명분으로 마셨죠. 별일이 없으면 무사히 한 주를 보낸 것을 기념했고요. 기쁜 날에도 술, 힘든 날에도 술, 평범한 날에도 술. 이쯤 되면 이유가 있어서 마셨다기보다 술을 마시기 위해 이유를 꽤 성실하게 기획하고 발굴한 편입니다.
그때는 그냥 제가 알코올을 지독히 사랑해서 그런 줄 알았어요. 그런데 요즘, 금요일을 술 생각 없이 보내는 날이 많아지다 보니 과거의 제 모습이 살짝 궁금해졌습니다. 제가 그토록 간절히 기다린 건 정말 술 한 잔이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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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병이 도져서 논문을 좀 뒤적여보니, 퇴근 후 술자리를 꽤 흥미롭게 설명하는 연구가 있더라고요. 직장과 물질사용을 다룬 한 연구에서는 동료들과의 퇴근 후 음주를 일에서 여가로 넘어가는 'lifestyle ritual(라이프스타일 의식)'로 봅니다. 술이 업무와 개인 시간의 경계를 만들고, 긴장을 풀고, 함께 있는 사람들 사이의 유대감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는 거예요.
이 대목에서 좀 뜨끔했어요. 아, 내가 술을 사랑한 것도 맞지만, 매주 금요일마다 꽤 성대한 '퇴근식'을 치르고 있었구나 싶었던 거죠. 제게 술은 진짜 퇴근 버튼에 가까웠거든요. 맥주 캔을 따거나 소주잔을 기울이는 순간, 자, 이제 진짜 끝. 회사에서의 나와 저녁의 나 사이에 선명한 줄 하나가 그어지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어떤 날 제가 원했던 건 알코올 그 자체라기보다 일주일이 무사히 끝났다는 감각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주종은 상황에 따라 꽤 부지런히 바꿨습니다. 더운 날에는 맥주, 삼겹살이나 회에는 소주, 비가 오면 막걸리. 오래 이야기하고 싶은 저녁에는 와인을 골랐어요. 누군가 결국 알코올이 들어가면 다 좋았던 거 아니냐고 묻는다면 크게 반박할 생각은 없습니다. 대체로 맞으니까요. (웃음) 그래도 그중 와인은 제게 조금 더 특별했습니다.
특히, 스파클링 와인을 참 좋아해요. 잔을 채우면 끊임없이 올라오는 기포도 예쁘고, 별일 없던 평범한 저녁도 괜히 축하할 만한 날처럼 만들어주는 마법이 있거든요. 다 같은 스파클링 와인이지만, '샴페인'이라는 이름은 프랑스 샹파뉴 마을에서 만든 스파클링 와인에만 붙일 수 있도록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그래서 프랑스에서 만들었지만 상파뉴 지방이 아닌 스파클링 와인은 크레망(Cremant), 독일은 젝트(Sekt), 이탈리아는 스푸만테(Spumante), 스페인은 카바(Cava)로 불러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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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무언가에 꽂히면 일단 직진하고 보는 성격이거든요. 좋아하면 찾아갑니다. 신혼여행에서도 그랬어요. 와이너리 투어를 하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여행지에 프랑스 남부를 일부러 끼워 넣었습니다. 와이너리를 보유한 샤토를 찾아 숙소로 정했고, 포도밭을 열심히 누비고 다녔죠. 하지만 제 샴페인 사랑의 정점을 찍은 곳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에페르네(Épernay)예요. 이곳은 세계적인 샴페인 브랜드 모엣 & 샹동(Moët & Chandon)의 본사가 위치한 곳인데요. 그 유명한 돔페리뇽도 바로 이곳에서 생산됩니다. 제가 이 모엣 샹동 하우스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거든요. 꼭 거길 방문해서 모엣 샹동과 돔페리뇽이 생산되는 거대한 지하 셀러를 직접 두 눈으로 꼭 보고 싶었어요.
문제는 그곳이 원래 짜둔 동선과 참 아름답게도 엇갈려 있었다는 거예요. 동선의 효율만 따지면 과감히 패스하는 게 맞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저에게는 여행의 효율보다 샴페인이 훨씬 중요했어요. 결국 모엣 샹동 하우스 투어 하나를 위해 전체 일정을 비틀고 에페르네에서 하루를 묵었습니다. 투어도 기왕 여기까지 온 거, 조금 더 비싼 프로그램을 골랐고요. 샴페인 하나 보겠다고 여행 동선을 쿨하게 망가뜨린 사람이 투어 가격에서 합리성을 찾는 것도 좀 웃기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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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그건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커다란 셀러를 돌아본 뒤, 투어 참가자들과 별도의 방에 둘러앉아 샴페인을 마셨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가이드가 잔이 비면 계속 샴페인을 채워주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어디까지 포함된 서비스였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어요. 투어를 함께한 사람들은 그날 처음 본,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낯선 사람들이었는데, 잔이 몇 번 오가자 자연스레 대화가 길어졌어요.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 한 시간이 넘도록 그 방에 앉아 있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거의 기억나지 않아요. 그런데 그 방의 공기는 아주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끊임없이 채워지던 잔, 처음 만난 사람들과의 끝없는 수다, 그리고 샴페인 하나 보겠다고 굳이 여기까지 달려온 제 자신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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돔페리뇽 직원이 직접 병을 들어 효모를 보여주는 모습 © 조선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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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피소드를 떠올리다 좀 재밌는 연구 하나를 발견했어요. 연구자들도 저처럼 낯선 사람들에게 술을 먹여본 건데요. 2012년 피츠버그대 연구진은 720명을 처음 보는 사람 세 명씩 한 그룹으로 묶었습니다. 알코올 음료, 술이 들어 있다고 믿게 한 위약 음료, 무알코올 음료를 마시게 한 뒤 표정과 대화를 분석했죠. 결과는 어땠을까요? 알코올을 마신 그룹에서 긍정적인 사회적 행동이 눈에 띄게 늘었고, 유대감도 훨씬 높게 나타났습니다. 이후 2,046명을 모은 메타분석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어요. 재미있는 건 술의 사회·정서적 보상 효과가 이미 친한 사람들끼리 있을 때보다 낯선 사람들과 있을 때 더 크게 나타났다는 점입니다.
이 대목을 읽자마자 에페르네의 그 방이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제가 간직하고 있던 건 샴페인의 정확한 빈티지나 맛이 아니었어요. 술을 핑계로 기꺼이 길어졌던 시간이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그대로 헤어져도 됐을 순간에 한 시간이나 더 머물게 만들었던 그 마법 같은 공기 말이에요. 그런 장면이 제겐 꽤 많았거든요. 금요일 밤의 해방감, 맛있는 음식, 밤늦도록 이어지는 대화, 여행지에서의 작은 일탈, 평범한 오늘을 조금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의식. 그래서 저는 술을 좋아해요, 라는 말은 사실 제 마음을 다 담기엔 조금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술과 함께 곁들여오는 그 모든 장면들을 사랑했던 사람에 더 가까웠어요. 그런데 참 이상하죠. 그 장면들은 지금 떠올려도 여전히 참 좋은데, 요즘의 저는 예전만큼 술이 당기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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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king과 Wanting은 다르기 마련(feat. 뜻밖의 위고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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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술 자체가 싫어진 건 절대 아니라는 겁니다. 맛이 없어진 것도 아니고, 좋은 샴페인에 대한 관심이 식은 것도 아니에요. 그러니 이번에는 '술을 좋아한다'는 감정과 '술이 당긴다'는 욕구를 좀 분리해서 뜯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예전 제 머릿속에는 조건반사 수준의 매크로가 깔려 있었어요. 누가 술을 권한 것도 아니고 눈앞에 술병이 아른거린 것도 아닌데, 금요일 오후 4시쯤 되면 저녁 메뉴와 함께 술 생각부터 자동으로 팝업처럼 떴습니다. 연구자들은 이런 매크로에 'Cue(단서)'라는 꽤 진지한 이름을 붙여놨더라고요. 어떤 보상과 반복해서 연결된 상황이나 사물은 나중에 그 자체로 '원하는 마음'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겁니다. 술병이나 삼겹살 냄새처럼 직접적인 자극뿐만 아니라, 특정 시간이나 장소에 대한 기대감 자체도 술 욕구와 연결될 수 있다는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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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최애 안주는 무엇인가요? © 비주얼다이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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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해서 꽤 흥미로운 실험이 있습니다. 2017년, 대학생 64명에게 실제로는 무알코올이지만 술이 들어 있다고 굳게 믿게 한 음료를 마시게 했어요. 그 결과, 술이라고 믿고 마신 참가자들은 더 높은 Craving(갈망)과 취기를 느꼈고, 이후 실제 맥주도 훨씬 더 많이 마셨습니다. 알코올이 1%도 없는데 지금부터 술을 마신다는 기대감만으로도 뇌가 반응한 거죠.
이걸 보니 아주 깊이 공감이 갔어요. 저 역시 한 모금 마시기도 전부터 이미 술자리를 즐기고 있었거든요. 와인 냉장고 앞을 서성거리며 병을 고르고, 조심스레 잔을 꺼내며 '오늘 이거 딸까?' 고민하는 그 순간. 뇌에서는 이미 도파민 파티가 시작된 겁니다. 제 술자리는 늘 첫 잔을 들이켜기 전부터 시작되고 있었어요. 게다가 제 일상엔 트리거가 너무 많았습니다. 금요일 오후, 영혼까지 털린 회의가 지나간 날, 지글지글 삼겹살 굽는 소리, 부딪치는 소주잔. 지난 몇 년간 이런 순간마다 빠짐없이 술을 곁들여왔으니, 제 뇌 입장에서도 꽤나 성실하게 딥러닝을 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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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젠슨황도 삼쏘회동을 하는데 말입니다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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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모순에 부딪힙니다. 저는 여전히 술이 맛있거든요. 퀄리티 좋은 샴페인을 마시면 지금도 잇몸이 만개하고, 술과 안주의 마리아주가 기가 막히면 박수를 칩니다. 그런데 왜 예전처럼 오늘 무조건 마셔야겠다고 외치며 찾지는 않을까요? 좋아하면 당연히 미친 듯이 원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 딜레마를 풀다, 이번 레터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심리학 개념을 만났습니다. 바로 ‘Liking’과 ‘Wanting’입니다. 미국의 보상 연구자인 켄트 베릿지(Kent Berridge)는 우리가 무언가를 순수하게 즐기고 좋아하는 것(Liking)과, 그것을 얻기 위해 갈망하고 쟁취하려 나서는 것(Wanting)을 철저히 구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우리 뇌에서 이 두 감정을 처리하는 회로 자체가 다르다고 해요. Wanting은 도파민, Liking은 엔돌핀 또는 세로토닌과 연계가 되어있다고 보면 쉽습니다.
재미있는 건 이 두 가지가 늘 찰떡같이 손을 잡고 다니지 않는다는 겁니다. 가장 극단적인 예가 '중독'이에요. 알코올이나 니코틴에 깊게 중독되면, 사실 그걸 마시고 피울 때의 즐거움(Liking)은 예전 같지 않거나 심지어 괴로운데도, 뇌가 미친 듯이 그것을 갈망하며(Wanting 폭발) 집착하게 됩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가능합니다. 딱 지금의 저처럼 말이죠. 대상을 향한 순수한 호감은 그대로인데, 굳이 에너지를 써가며 쟁취하려는 엔진만 툭 꺼지는 겁니다. Berridge의 최근 연구에서도 무언가를 원하는 힘(Wanting)은 과거에 그것을 얼마나 좋아했는지와 늘 정비례해서 움직이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쉽게 말해 Liking이 혀끝이나 기분으로 느끼는 만족감이라면, Wanting은 사람을 퇴근길에 뛰게 만들고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게 만드는 도파민의 영역이거든요. 다시 말해 이런 거죠. 제 미각은 아직 샴페인을 몹시 사랑합니다(Liking). 그런데 예전처럼 샴페인을 마시겠다고 여행 동선을 뒤엎거나 와인샵으로 냅다 뛰어가지 않아요(Wanting의 저하). 이렇게 세팅하고 나니 '나는 술을 좋아한다'와 '요즘 술이 별로 안 당긴다'는 두 문장이 제 안에서 아주 평화롭게 공존하게 되었습니다. 둘 다 팩트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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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음 퀘스트가 남습니다. 대체 왜 제 Wanting의 볼륨이 줄어들었을까요? 개인적으로 가장 첫 번째 변곡점은 임신이었습니다. 인생에서 알코올과 그렇게 오래 강제 이별을 해본 건 처음이었죠. 막상 강제로 마실 수 없는 세팅이 되자, 의외로 술 생각이 별로 안 나더라고요. 게다가 술이 청구하는 청구서의 체감 비용이 달라진 것도 한몫했습니다. 예전에는 다음 날 숙취가 쓰나미처럼 몰려와도, 늦잠 푹 자고 해장하면 그만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같은 술을 앞에 두고도 손익계산서가 다르게 찍힙니다. 다음 날 잃어버릴 수면의 질과 컨디션이 너무 아깝고, 주말의 밀린 일정이 눈에 밟혀요. 술은 똑같은데, 그 술 한 잔이 제 라이프스타일에서 차지하던 지분이 확 쪼그라든 느낌입니다. 금요일에 술 대신 갑자기 마라톤을 뛴다거나 엄청난 생산적 취미로 그 빈칸을 채우는 건 아니에요. 그냥 금요일이 오고, 넷플릭스를 보면서 하루를 평온하게 떠나보내죠.
그리고 제 Wanting을 아주 조용하게 뮤트시켜버린, 정말 뜻밖의 치트키가 최근 하나 더 있습니다. 다이어트계의 게임체인저라 불리는 그 이름, 위고비(Wegovy)예요. 단순히 체중 감량을 목적으로 시작했는데, 뜻밖에도 제 금요일까지 덩달아 평온해졌습니다. 식탐이 확 줄면서 알코올에 대한 욕구도 같이 증발해버린 느낌이에요. 사실 이걸 학계에서도 꽤 진지하게 파고들고 있더라고요. 세마글루타이드를 비롯한 GLP-1 계열 약물이 알코올사용장애(AUD)의 새로운 치료 솔루션이 될 수 있을지 실제 임상시험이 팽팽하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2025년 발표된 연구를 보면, 세마글루타이드를 투여받은 그룹은 알코올 섭취량이나 주간 Craving(갈망) 등 몇 가지 지표가 유의미하게 꺾였습니다. 2026년의 다른 연구에서도 실제 생활에서의 폭음일이나 1회 음주량 지표가 감소하는 패턴이 나타났고요.
물론 이걸 보고 '위고비가 알코올 중독을 완치한다?!'라고 뉴스레터 제목을 뽑으면 과장광고로 철퇴 맞을 소리입니다. 아직 공식 치료제로 승인된 것도 아니고 후속 연구되어야 하는 부분도 산더미니까요. 하지만 그 가능성을 실제 임상에서 아주 유망하게 지켜보고 있다는 건 팩트입니다. 다른 연구에서도 GLP-1 계열 약물이 알코올사용장애(AUD) 치료에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지만, 아직 더 검증해야 할 새로운 접근으로 얘기하고 있거든요. 저는 이 대목에서 소름이 살짝 돋았어요. 제가 최근 겪은 변화도 제 인내심이나 절제력이 갑자기 레벨업해서가 아니었거든요. 뇌에서 울리던 '술 줘!'라는 알림음 자체가 무음 모드로 바뀐 것에 가까웠죠. 욕망의 볼륨을 조절하는 다이얼이 약물 하나로 이렇게 쉽게 돌아가다니, 인체의 신비란 참 놀랍습니다.
그럼 이제 제게 남은 진짜 마지막 질문 하나를 꺼내볼게요. 술과의 관계가 이토록 변해버렸다면, 그동안 '술 좋아하는 나'로 살아왔던 제 캐릭터 세계관은 붕괴하는 걸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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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하자면, 금요일 밤 술자리를 패스하는 제 모습보다 더 낯설게 느껴졌던 건 흔들리는 제 캐릭터였습니다. 제가 임신했을 때 주변에서 걱정해 준 건 괜한 호들갑이 아니었어요. 저는 어디 가서든 아주 확실하고 선명한 애주가 포지션이었거든요. 저 스스로도 그 퍼스널 브랜딩을 꽤 맘에 들어 했고요. 술자리마다 빠지지 않으면서, 주종도 딱히 가리지 않는데 핫한 바 리스트는 꿰고 있고, 페어링 좋은 음식을 찾아다니고, 여행지마다 로컬 술을 섭렵하는 사람. "저 술 진짜 좋아해요"라는 짧은 자기소개 안에는 제 라이프스타일의 꽤 많은 지분이 들어있었습니다.
재밌는 건 이 감정도 심리학에 이미 족보가 있다는 겁니다. 학계에서는 이걸 Drinker identity(음주자 정체성)라고 부릅니다. 술을 마시는 행위를 자기 자신의 자아상에 얼마나 깊이 포함하고 있는지를 의미해요. 이는 무의식적으로 '나 = 술 마시는 사람'이라고 연결짓는 것부터, 스스로를 '사교적 음주자(Social drinker)' 혹은 '애주가(Heavy Drinker)'라고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까지 폭넓게 아우르는 개념이에요. 더 나아가 이러한 정체성은 개인의 실제 음주 패턴은 물론, 사람들과 유대감을 맺는 방식, 그리고 알콜 중독으로부터의 회복 여부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 정체성이 음주 행동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무려 87편의 연구를 분석한 논문도 있을 만큼 꽤 논의되는 주제라고 할 수 있어요. 음주 습관 자체가 정체성이 될 수 있다는 건, 다시 말해 전 오랫동안 저를 설명해 주던 든든한 정체성 하나를 잃어버린 것 같은 상황에 놓였단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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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건 대단한 변심도 아닙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저는 철저하게 제가 원하는 것에 충실할 뿐이니까요. 예전에는 마시고 싶은 욕망(Wanting)을 따랐을 뿐이고, 지금은 원래 애주가였다는 구차한 체면 때문에 억지로 병을 따지 않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돌아가 Liking과 Wanting의 차이로 결론을 내면 모든 게 꽤 명쾌해집니다. 저는 아직도 술을 아주 많이 사랑합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술자리는 지금도 여전히 기분이 좋고요. 퇴근 후 친구들 또는 동료들과 어울려 마시는 맥주 한 잔도 여전히 꿀맛입니다. 좋은 샴페인을 마시면 지금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신나요. 기회가 된다면 에페르네 투어는 꼭 다시 예약할 겁니다. 하지만 금요일이 왔다고 해서 습관처럼 술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Liking)과 당장 그것을 쟁취하고 싶은 마음(Wanting)은 꼭 같은 속도로 달려가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래서, 술이 여전히 제 최애냐고 물으신다면… 음. 일단은 굳건히 '그렇다'고 해둘게요. 최애라고 꼭 일주일에 한 번씩 출석 체크하며 만나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가끔 멀찍이서 안 보고 살아도, 애틋하게 롱런할 수 있는 게 진짜 찐사랑이니까요. 무엇보다, 누군가 지금 당장 제 잔에 훌륭한 샴페인을 따라준다면, 저는 아마 언제든지 아주 기분 좋게 비워낼 겁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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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님의 일상 속 '최애'는 무엇인가요? 혹시 저처럼 최애와 권태기를 맞이한 적이 있다면 답장으로 썰을 좀 풀어주세요. 저만 이런 건지 너무 궁금하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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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 | 초보 양육자의 불안과 걱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면서도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 또한 단단히 들어있는 글이었어요. 저는 비혼이고 아이도 없지만 SNS에 난무하는 건강 콘텐츠에 대한 부분이 너무 공감되어서 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아무래도 아픈 데가 늘고, 그러나 어디가 아픈 건지 점점 더 불명확하다 보니 검색을 하게 되는데 그게 마치 개미지옥처럼 나 큰병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으로 끌어당기더라고요. 막상 병원에 가면 처방약 3일 정도 먹고 낫는 증상인 경우가 많은데 말이죠. 오히려 그 불안이 더 병이 될 것 같아 언젠가부터 의식적으로 건강 관련 콘텐츠를 잘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특히 '이 증상 있으면 당장 병원 가세요'나 '이런 증상 그냥 넘기면 큰일납니다' 같은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제목이 붙은 쇼츠나 릴스는 무조건 피하고 있어요. 대부분 도움도 안 되는 내용인 데다가 어떤 증상이 어떤 병과 연결되는지는 의사도 쉽게 판단하지 못하는 영역인데 1분 남짓의 영상이 제대로 된 정보를 줄 리 없으니까요. 정보가 넘치는 세상이지만 역설적으로 그래서 더 제대로 된 답을 찾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겠죠. 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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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가 넘치는 세상이라 좀 더 무섭기도 한 세상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AI는 앞으로 더 발전할테고 온라인은 좀 더 일상 깊숙이 들어올테지만, 그 속에서 우리가 중심을 잡지 않으면 점점 더 곤란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더 깊이 사유하고 더 깊이 성찰하고, 더 많이 공부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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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Zoe>의 코멘트
애주가 하면 둘째가로는 서러울 성시경 오라버니의 영상 공유해드리며 오늘 레터 마무리하겠습니다. 이분 요새 다이어트 빡세게 하시고 미모가 리즈 시절로 돌아가셨더라고요. 시경 오라버니는 과연 주량이 전과 같으실지, 술맛이 예전보단 떨어지지는 않으셨을지... 궁금해지는 요즈음입니다. (고막남친 시즌제 말고 평생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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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터가 마음에 드셨다면 더 좋은 퀄리티와 꾸준한 활동을 위해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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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업문의 augustletter08@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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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oe • 구현모 • 찬비 • 오리진 • 요니 • 장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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