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좋고 둘 다 싫은 극강의 밸런스게임 장희수 "서울살이의 빡셈을 느끼고 있습니다..." |
|
|
안녕하세요, 에디터 장희수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한국과 미국의 삶은 어떻게 다른지를 많이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오늘 한우물클럽은 미국 vs 한국 밸런스게임입니다!
미리 말씀드리면, 이건 무슨 정확한 분석 같은 건 전.혀. 아닙니다! 한국은 집단주의, 미국은 개인주의… 이런 큰 말로는 잘 안 잡히는, 같은 단어인데 나라가 바뀌면 온도가 달라지는 그런 순간들을 좀 써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여러분은 어떻게 느끼시는지도 진짜 궁금해요. 읽다가 "어, 난 완전 반대인데?" 싶은 게 있으면 꼭 알려주세요.
자, 오늘 준비한 밸런스 게임은 총 네 판입니다. 정답은 없고요, 그냥 읽으면서 "나는 이쪽" 하고 골라보시면 됩니다. 시작해보시죠! |
|
|
1. 가족: 돈은 벌어주지만 곁엔 없기 vs 곁엔 있지만 우리끼리 떠안기
2. 사회생활: 끈끈하지만 퇴근 없이 살기 vs 칼퇴하지만 주말 없이 살기
3. 건강: 운동은 하되 아파도 병원 못 가기 vs 운동은 못 해도 죽을 땐 살려주기
4. 친절: 무뚝뚝해도 빠르게 vs 친절해도 느리게
|
|
|
밸런스1. 가족
돈은 벌어주지만 곁엔 없기 vs 시간은 내주지만 우리끼리 떠안기 |
|
|
자, 첫 번째 밸런스게임입니다.
① 시간은 내주지만, 손이 필요할 땐 핵가족 내에서 해결하는 미국
"한국은 가족 중심, 미국은 개인주의"라는 말, 들어본 적 있으시죠? 그런데 미국에서 살다 보면 이 말이 점점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미국 사람도 가족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어떤 면에서는 한국보다 더 눈에 보이게 챙겨요. 아이들 축구 경기, 야구 경기에 부모들이 정말 열심히 갑니다. 세네시만 돼도 "아이 픽업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라는 말도 꽤 들어요. 가족 저녁, 주말 바베큐, 생일 파티,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파티... 가족 사랑이 "오후 4시 축구 경기", "토요일 바비큐" 같은 식으로 캘린더에 행사 일정으로 선명하게 찍혀 있어요.
"승진하면 출장이 늘어서 애들 경기를 못 봐요"라며 승진을 미루는 사람, 더 큰 자리를 위해 이사해야 하는데 "가족이 여기 뿌리내려서 안 가겠다"는 사람도 꽤 봅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위해서 돈을 덜 버는 선택이 생각보다 흔해서 놀랐어요.
그런데 가족이 감정적으로는 가까운데, 막상 진짜 손이 필요한 순간엔 핵가족 내에서 해결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아이가 갓 태어났을 때, 누가 아플 때, 부모가 늙어갈 때. 한국이라면 가까이 사는 부모형제가 달려와 메워주는 일을 흔하게 보는데, 미국에서는 흔하진 않아요. 베이비시터, 데이케어, 요양 서비스. 형편이 안 되면 그냥 둘이서, 혹은 혼자서 다 짊어져요. 주말 경기엔 그렇게 모이던 가족이, 정작 위기 앞에서는 각자의 집과 각자의 도시로 흩어져 있습니다. 대륙이라서 그런 것도 있나 싶어요.
② 등골 빼서 벌어주지만, 곁엔 있어줄 여유가 없는 한국
한국에서 "가족을 위한다"는 말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지는 것 같습니다. 좋은 가족 구성원이란, 가족과 매일 저녁을 함께 먹는 사람이라기보다 가족을 책임지는 사람에 더 가까워요. 좋은 직장을 갖고, 돈을 벌고, 부모님을 챙기고, 자녀 교육을 고민하고, 집을 마련하고, 가족이 흔들리지 않도록 버티는 것.
그래서 한국에서는 "가족 때문에 승진을 포기했다"는 말은 가족을 위한 결정으로 안 보일 확률도 있는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승진하고 돈 버는 것 자체가 이미 가족을 위하는 방식이라, 그걸 내려놓는 결정이 오히려 책임을 저버린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저희가 다 아는 이 선택지의 모순은 가족을 위해 일하다 보면 정작 가족과 같이 있을 시간이 줄어든다는 거죠. 부모님은 "우리는 괜찮으니 너만 잘되면 된다"고 하고, 자식은 "나중에 더 잘해드려야지" 생각하죠. 배우자 간에도 시간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나중"을 위해 지금은 계속 바쁩니다. 가족을 너무 사랑해서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자꾸 뒤로 밀려요. 사랑은 있는데 자리가 없습니다. 마음은 있는데 시간이 없고요. |
|
|
2021년 퓨 리시처센터에서 한국인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물질적 풍요"라며 "가족"을 선택한 다른 선진국과 다르다는 해석을 내놓았는데, 한국인에겐 이 "물질적 풍요"가 결국 "가족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요?
© 퓨리서치센터, 이코리아뉴스 재인용 |
|
|
③ 왜 이렇게 됐을까
한국의 책임감형 사랑은 가난을 너무 빨리 통과한 사회의 흔적 같습니다. 한 세대 만에 전쟁의 폐허에서 선진국까지 달려온 나라잖아요. 그 압축된 시간 동안 가족은 정서적 단위이기 전에 생존 단위였습니다. 한 사람이 벌어서 부모를 부양하고 동생을 학교에 보내고 자식을 대학에 보냈어요. 그 시절엔 돈을 벌어다 주는 게 곧 사랑이었습니다. 같이 저녁 먹어주는 것보다 등록금을 대주는 게 훨씬 절박한 사랑이었으니까요. 그 공식이 먹고살 만해진 지금까지도 몸에 남아 있는 것 같아요. 더 이상 굶지 않는데도, 가족을 위한다는 말이 자꾸 "더 벌고 더 버티는" 쪽으로 기웁니다.
미국의 시간형 사랑은 일과 가정을 일찍부터 갈라놓은 사회의 결과처럼 보입니다. 직장은 직장, 집은 집이라는 경계가 비교적 또렷하고, 일은 가족을 부양하는 수단이지 그 자체가 가족에 대한 헌신으로 여겨지진 않아요. 게다가 미국 사람들은 일자리를 따라 자주 이사를 다니죠. 대가족이 한 동네에 모여 사는 게 아니라 다들 흩어져 살다 보니, 가족이 자동으로 곁에 있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족 시간은 가만히 두면 사라지는 것, 의식적으로 일정에 넣어야 지킬 수 있는 것이 됐어요. 캘린더에 적어두는 사랑은 어쩌면 흩어진 사회가 가족을 붙들어두는 방식인지도 모릅니다.
한국의 가족 사랑은 뒷모습으로 보여주는 사랑 같습니다. 야근하는 뒷모습, 장 보러 가는 뒷모습, 운전하는 뒷모습, 병원 예약하는 뒷모습. 미국의 가족 사랑은 캘린더에 일정을 적어두는 사랑 같고요. 금요일 저녁 식사 일정, 토요일 경기 일정, 일요일 가족 모임 일정. 가족이라는 단어도 나라를 건너가면 사랑의 방식이 달라진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
|
|
미국 가정집 놀러가면 높은 확률로 벽이나 냉장고에 중요한 가족 일정을 보여주는 가족 일정 캘린더 걸려있음...
© christinetrevino.com |
|
|
밸런스2. 사회생활
끈끈하지만 퇴근 없이 살기 vs 칼퇴하지만 주말 없이 살기 |
|
|
자, 두 번째 밸런스게임입니다! "미국은 회식 없어서 좋겠다"고들 하는데, 사실 두 나라 다 퇴근하고도 이어지는 사회생활이 있어요. 그게 나타나는 시간과 장소가 다를 뿐입니다.
① 끈끈하게 챙겨주지만 퇴근을 안 시켜주는 한국
한국 회식은 단순히 "일 끝나고 같이 밥 먹는 자리"라기보다 "일이 끝난 뒤에도 계속되는 일"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누가 어디 앉는지, 누가 술을 받는지, 누가 먼저 빠지는지. 별것 아닌 것 같은데 다 정보가 됩니다. "오늘은 편하게 먹자"가 진짜 편하게 먹어도 된다는 뜻인지, "먼저 가도 돼"가 정말 먼저 가도 된다는 뜻인지. 회식 자리엔 메뉴판 말고도 읽어야 할 게 너무 많아요. 위계가 풀리는 척하다가 오히려 더 또렷하게 보이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한국 회식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에요. 이 끈끈함이 실제로 사람을 묶어줄 때가 있습니다. 어색하게 시작한 술자리에서 의외로 진짜 속말이 오가고, 평소엔 어렵던 선배가 슬쩍 고민을 들어주고, "우리 사람"이라는 소속감이 생기기도 해요. 잘 풀린 회식 다음 날엔 회사가 조금 덜 외로워집니다.
② 칼퇴시켜주는 대신 주말에 부르는 미국
미국 회식은 보통 더 짧고, 더 캐쥬얼한 것 같습니다.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일은 드물고, 술을 강요하는 분위기도 덜합니다. 무엇보다 평일엔 칼퇴가 돼요. 6시면 진짜로 내 시간이 시작됩니다. happy hour(퇴근 후 한잔), networking lunch(인맥 쌓는 점심), holiday party(연말 파티)가 있긴 하지만, 끝이 정해져 있고 먼저 일어나도 아무도 서운해하지 않아요. 해피아워가 있는 날에는 퇴근 후에 시작되지 않고 보통 일과시간에 포함되는 경우도 많고요!
그런데 평일에 칼퇴한 대가는 주말에 슬그머니 돌아옵니다. 미국에서 사회생활은 늦은 밤이 아니라 주말 낮으로 자리를 옮겨요. 사장님 뒤뜰 바베큐, 동료의 집들이, "캐주얼한" 브런치 모임. 강요되는 자리는 아니지만, 초대장을 받았을 때 안 가기엔 FOMO(소외에 대한 두려움)가 생기기 쉬운 환경입니다. 그런데 가더라도 청바지 입고 맥주 한 캔 들고 웃고 있지만, 사실 거기서도 나는 계속 일하는 중입니다. 누구 옆에 서야 하는지, 어디까지 농담해도 되는지, 사장님 아이 이름은 기억하고 있는지. 복장만 편해졌을 뿐 평가받고 있다는 사실은 그대로예요. 사회생활이 다 그렇죠...! 나를 자연스럽게 소개하고, 하는 일을 흥미롭게 설명하고, 질문도 던지고, 대화가 죽지 않게 살려야 합니다. 한쪽은 술잔을 들고, 다른 쪽은 바베큐 집게를 들고 있을 뿐, 둘 다 사회생활은... 쉽지 않습니다. |
|
|
이메일에 답장 안 한 옆 팀 대리 보고 표정 관리 안되기 (red-red) |
|
|
협업하는 팀 팀장님 성함 기억 안 나서 당황하기 (red-red) |
|
|
③ 왜 이렇게 됐을까
한국의 끈끈한 회식은 회사를 또 하나의 가족처럼 여겨온 조직 문화에서 온 것 같아요. 한 직장에 오래 머물고, 연차와 직급으로 위아래가 촘촘하게 짜이는 구조에서는 인간관계 자체가 곧 업무 능력입니다. 술자리는 그 위계를 확인하고 또 잠시 누그러뜨리는 의식 같은 거예요. "같이 취해본 사이"가 "믿을 수 있는 사이"가 되니까, 회식은 친목이면서 동시에 일의 연장이 됩니다.
미국식은 직장을 계약 관계로 보는 시선에서 나온 것 같고요. 이직이 잦고, 회사가 평생 공동체가 아니라는 전제가 깔려 있어서 정시 퇴근에 죄책감이 덜합니다. 대신 회사가 내 인맥을 책임져주지 않으니, 사람 관계는 개인이 알아서 관리해야 해요. 그래서 사교가 회사 바깥, 주말의 사적인 모임으로 흩어집니다. 한국에선 조직이 끈끈함을 요구하고, 미국에선 개인이 사교성을 챙겨야 하는 거죠. 앞으로 한국도 미국처럼 변하긴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
|
|
밸런스3. 건강
운동은 하되 아파도 병원 못 가기 vs 운동은 못 해도 죽을 땐 살려주기 |
|
|
자, 세 번째 밸런스게임입니다.
① 운동은 평소 생활인데 병 걸리면 얄짤 없는 미국
미국에 살면서 제일 신기했던 것 중 하나는 사람들이 정말 운동을 많이 한다는 거였어요. 운동이 대단한 새해 결심이 아니라 그냥 생활 안에 들어와 있어요. 게다가 운동하기가 생각보다 부담이 없어요. 플래닛피트니스 같은 프랜차이즈 헬스장은 한 달에 2~3만 원밖에 안 하고, 주말이면 동네 5K 마라톤이나 파크런 같은 행사가 흔하고, 회사에서 헬스장 비용을 일부 대주는 웰니스 프로그램도 많습니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축구·야구·수영을 기본으로 하고요. 애슬레저 차림으로 마트에 장 보러 가도 전혀 안 어색할 만큼, 여기선 운동이 패션이자 일상이에요. (물론 모두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미국은 지역·계층 차이가 커서 누군가에겐 운동도 시간과 돈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에요.)
그런데 살다 보면 다른 면이 보입니다. 미국에서는 병원 가는 일이 너무 어렵거든요. 아프다고 그냥 가면 되는 게 아니에요. 보험을 확인하고, 내 보험을 받는 병원인지 보고, 예약을 잡고, 코페이(매번 내는 본인부담금)와 deductible(보험이 보장을 시작하기 전까지 내가 먼저 채워 내야 하는 자기부담 한도)을 계산하고, urgent care(예약 없이 가는 즉시진료 클리닉)를 갈지 primary care(평소 다니는 주치의)를 갈지 고민해야 합니다. 몸이 아픈데 의사를 볼 수 있을 때까지 행정적인 절차가 너무나 많아요.
특히 전문의를 보려면 보통 주치의를 먼저 만나 의뢰서(referral)를 받아야 하는데, 그 예약부터가 몇 주에서 몇 달 뒤예요. 피부 트러블 하나 보려고 피부과를 잡는데 두 달이 걸리는 식이죠. 응급실은 더 무섭습니다. 한 번 다녀오면 몇백, 심하면 몇천 달러짜리 청구서가 날아오니까요. 그러다 보니 웬만한 건 그냥 버티거나, 약국에서 파는 상비약으로 때우거나, 구글로 자가진단을 하게 됩니다. |
|
|
눈물을 보이자 의사가 "감정 진단"을 명목으로 40불 (약 6만원)을 추가로 청구했다...
출처: 미국병원에서 절대 울면 안되는 이유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유명한 고전짤 |
|
|
② 평소 운동할 틈은 없지만 병 걸리면 살려주는 한국
한국에서는 "일단 병원 가보자"가 가능한 말이죠. 오늘 목이 아프면 오늘 이비인후과에 가고, 배가 아프면 내과에 갑니다. 동네에 내과, 이비인후과, 정형외과, 피부과, 약국이 줄줄이 늘어선 풍경은 미국에서 살다 보면 거의 판타지처럼 느껴져요. 몸이 삐걱거리면 일단 갑니다. 검사하고, 약 받고, 주사 맞고, 물리치료 받고, 어떻게든 다시 굴러가게 만들어요. 자동차 정비소 같은 느낌.
대신 평소에 운동할 여유를 만들기가 쉽지 않아요. 일하고, 통근하고, 회식하고, 가족 챙기고, 밀린 카톡에 답하고, 겨우 집에 오면 이미 체력이 간당간당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운동할 삶이 없어요. 헬스장 등록으로 기부한 경험... 다들 있으시죠? 한국에서 운동은 자꾸 "해야 하는 일" 목록에 들어가요. 영어 공부, 건강검진, 재테크 옆에 끼어 있죠. 대신, 내가 골골대고 몸이 점차 늙고 허약해지는 기분이 들지만 건강보험과 의료시스템이 나를 살려줄 거라는 강력한 믿음이 있습니다!
③ 왜 이렇게 됐을까
한국은 치료를 사회가 싸고 빠르게 책임지는 쪽으로 의료를 깔아놓은 것 같아요. 전 국민 건강보험에, 동네마다 의원이 빽빽하게 경쟁하니, 아프면 곧장 갈 수 있습니다. 대신 노동시간이 길고 삶의 속도가 빨라서, 정작 아프기 전에 몸을 돌볼 시간은 잘 안 줍니다. 그러니 평소엔 몸을 혹사하다가 고장 나면 병원으로 달려가는 구조가 돼요.
미국은 반대예요. 치료가 비싸고 복잡하니, 아예 아프기 전에 각자 알아서 관리하는 게 합리적인 생존 전략이 됩니다. 운동하고, 식단 챙기고, 예방하고, 몸을 장기 프로젝트처럼 운영해요. 건강이 자기관리의 영역, "네 몸, 네 책임"이 되는 거죠. 거기에 상대적으로 여가 시간이 받쳐주니 운동을 일상에 끼워 넣을 여지도 생깁니다.
건강하게 살기엔 미국이 나은 것 같다가도, 막상 아프면 한국행 비행기표를 검색하게 됩니다. 목숨을 건 극강의 밸런스 게임... 어디를 선택하시겠어요...? |
|
|
밸런스4. 서비스
무뚝뚝해도 빠르게 vs 친절해도 느리게
|
|
|
자, 네 번째 밸런스게임입니다.
① 무뚝뚝하지만 해결이 빠른 한국
한국은 진짜 빨라요! 서비스가 빠른 해결에 가까울 때가 정말 많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일단 누군가 움직여요. 식당에서 벨을 누르면 직원이 오고, 택배는 믿기지 않는 속도로 도착하고, 가게에서 문제가 생기면 대체로 그 자리에서 해결하려고 합니다. 말투가 아주 부드럽지 않아도, 표정이 다정하지 않아도, 일은 척척 처리돼요.
스몰토크? 그런 건 없습니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난 사이니까요. 예를 들어 휴대폰이 고장 났다고 해볼게요. 한국에선 그냥 매장에 들고 갑니다. 번호표 뽑고 조금 기다리면 직원이 들여다보고, 그 자리에서 고쳐주거나 바로 바꿔줘요. 인터넷이 안 되면 기사님이 빠르면 당일, 늦어도 다음 날 옵니다. 관공서 서류는 무인 발급기에서 1분이면 떼고요. 음식은 시키면 30분 안에 문 앞에 도착하고, 환불이나 교환도 대체로 두말없이 됩니다. 진짜 신기할 정도예요. 직원이 살갑게 웃어주진 않아도, 일은 분명히, 그리고 빠르게 끝나요. 여기선 효율이 곧 친절인 셈입니다. 마음이 따뜻해지진 않아도, 문제는 오늘 안에 사라지니까요.
그래서 살가운 응대보다 "내 문제가 오늘 안에 끝나는 것"이 더 중요한 사람이라면, 망설일 것도 없이 한국입니다. 빈말이나 격식 없이 곧장 본론으로 가는 게 편한 사람, 친절은 안 받아도 좋으니 일만 빨리 끝났으면 하는 사람, 무엇보다 자기 시간을 아끼고 싶은 사람. 그런 사람에게 한국의 서비스는 거의 천국이에요. 점원이 웃지 않아도 서운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친구 하러 만난 게 아니니까요. 급할 땐 다정한 말보다 "지금 됩니다"라는 한마디가 훨씬 따뜻하잖아요.
② 친절하게 세월아 네월아 미국
미국의 친절은 일단 부드러운 말투가 핵심입니다. "How are you?"(잘 지내요?) "No worries."(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I appreciate you."(고마워요) "Have a good one."(좋은 하루 보내세요) 같은 말이 일상 곳곳에 깔려 있어요. 커피 한 잔을 사도 내가 세상에서 아주 미세하게 환영받는 기분이 듭니다. 여기에 스몰톡도 아주아주 흔하고요.
그런데 말이 부드럽다고 일이 해결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아주 친절한 목소리로 "안 됩니다"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이메일도 너무 공손해요. "Thank you so much for reaching out"(연락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으로 시작해서 결론은 "못 해줌"이에요. 인터넷 설치가 안 돼서 전화를 걸면, 상담원은 내 하루가 얼마나 불편했을지 이해한다고, 기다려줘서 고맙다고, 내 인내심에 감사를 표한다고 막 칭찬을 합니다. 그리고 다음 방문 일정은 3개월 뒤라고 해요. 예?? 지금 우리가 전화 통화를 1시간 했는데 문제를 해결 못해주신다고요?
이게 인터넷만의 일이 아니에요. 운전면허 갱신하러 DMV(차량등록·면허 담당 관청)에 가면 직원은 상냥한데 줄은 다섯 시간이고, 은행 계좌 하나가 막혀도 "정말 죄송해요, 충분히 이해해요"를 열 번쯤 들으며 며칠을 기다립니다. 병원에 다녀오면 몇 주 뒤에 영문 모를 청구서가 날아오고, 그걸 따지러 전화하면 또 친절하게 빙빙 돌아요. 반품 한 번 하려 해도 미소 띤 얼굴로 정책을 한참 설명하는데, 결국 "안 된다"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정함은 늘 풀세트인데 해결은 옵션인 거예요. 처음엔 그 다정함에 마음이 풀렸다가, 같은 문제로 세 번째 전화를 걸 때쯤이면 따뜻한 말이 오히려 약 올리는 것처럼 들립니다. 물론 일이 느릴 뿐, 사람으로서 함부로 대해지지 않는다는 안정감을 중요하게 여기면 역시 미국일 것 같네요.
③ 왜 이렇게 됐을까
한국은 속도가 곧 경쟁력인 사회잖아요? "빨리빨리"가 미덕이고, 어디든 비슷한 가게가 많아 늦으면 손님이 바로 다른 데로 갑니다. 그러니 서비스가 "결과를 얼마나 빨리 주느냐"로 승부를 봐요. 게다가 국토가 좁고 인구가 밀집해 있어서, 기사도 배달도 매장도 물리적으로 가깝습니다. 동선이 짧으니 빠를 수밖에 없어요. 상대적으로 인력도 많고 인건비도 낮아서, 사람을 빠르게 움직이게 하는 일이 가능합니다. 다정한 말보다 처리 속도가 먼저인 게 자연스러운 것 같습니다.
미국은 정반대 조건이에요. 일단 땅이 넓어서 물리적 거리 자체가 큽니다. 기사가 우리 집까지 오는 데만 며칠이 걸리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에요. 인건비는 비싸고 노동 보호도 강해서, 사람이 직접 움직이는 일은 느리고 비쌉니다. 시스템도 잘게 분업화돼 있어, 담당자가 재량껏 그 자리에서 해결해주기 어렵고요. "그건 제 부서가 아니라서요"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입니다. 대신 서비스직의 매너와 감정 표현은 규범으로 단단히 자리 잡았어요. 팁 문화, "고객 경험" 중시, 컴플레인과 소송에 민감한 분위기가 겹쳐서, 일 처리는 느려도 말만은 한없이 따뜻합니다.
그래서 한국의 서비스는 "해드렸습니다"에 가깝고, 미국의 서비스는 "당신이 불편하지 않게 말하겠습니다"에 가까워요. 가끔은 둘을 합치고 싶습니다. 빨리 해결해주면서 말도 따뜻하게 해주면 안 될까요... |
|
|
미국 오면 상담원과 연결 되는 데 2시간 기다려본 적은 다들 있습니다...
출처 =andrewgenn/gettyimages |
|
|
자, 네 판 다 돌았습니다. 몇 대 몇으로 골라지셨어요?
이 밸런스 게임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건 두 나라의 차이는 생각보다 "있고 없음"이 아니라는 점인 것 같습니다. 가족이 어떻게 해석되는지, 친절이 어떻게 해석되는지, 사회생활이 어떻게 해석되는지... 해석의 차이인 것 같아요.
완벽한 곳은 없나 봅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밸런스 게임이 아닐까요...?
해외살이 해보신 분들…! 제가 빠뜨린 한국 vs 해외 밸런스가 있으면 추천해주세요. |
|
|
💌 협업문의 augustletter08@gmail.com
|
|
|
Written by Zoe • 구현모 • 찬비 • 오리진 • 요니 • 장희수 |
|
|
Copyright © AUGUST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
|
|